잡지에서 읽은 시

노엘/ 서형국

검지 정숙자 2024. 1. 14. 20:17

 

    노엘

 

    서형국

 

 

  그해 겨울은 납작 엎드려 왔지만 사람들은 겨울을 밟고 연탄재를 뿌리며 오직 캐럴을 부르는데 열중했다

 

  기쁘다 거룩하다 그래서 운다는 사람들이 살이 문드러지는 병을 거두며 키운 돼지를 마을 십자가에 바쳤고 언 땅에서 거둔 시금치가 눈의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아이는 밤이 소유한 모든 빛을 동원해 녹슨 지붕을 밝혀주길 기도했다

 

  낮은 곳으로 가자

  아이야

 

  너도 누군가의 소원이었으니

  세상 모든 소원은 이미 누군가 이루었단다

 

  기도는 이런 것이지

 

  기울어 흉물이 된 누각에 올라 자신이 만든 폐허를 내려다보며 당신의 염원을 내 발밑에 두게 해 달라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저 거대한 세상에 몰딩을 씌워 두 편 쪽방에 액자로 걸 수 있게 해 달라고 

 

  아이야

 

  지금도 남산공원에는 자신의 몇 번째 계단이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섬을 가졌는지 모르는 전망대가 다 탄 기도처럼 녹아 있단다 그러니 아이야

 

  낮음을 노래하자

  바짝 숙인 채 덮쳐 오는 저 파랑주의보를

 

  그들은 혀를 세운 자의 기도는

  듣지 못한단다

    -전문(p. 194-195)// 『다층』 2022-가을(96)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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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100> 에서

  * 서형국/ 2018『모던포엠』으로 등단, 시집『시골시인-K』(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