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건축된 숲/ 이기현

검지 정숙자 2023. 10. 31. 02:34

 

    건축된 숲

 

     이기현

 

 

  병든 신과 함께 지내던 방에서 우리는 늘 외로웠지 이곳을 변방이라고 부르는 이방인들이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며 심장을 두고 떠나면

 

  우리는 번갈아 가며 서로의 심장을 새것으로 갈아 끼워주곤 했다 그러면 장은 조금씩 넓어져 구릉지가 되었고 묘목을 심으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숲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나자 동물들이 태어나고 마을이 지어지고 제단이 만들어지고 우리를 보았다는 예언자가 떠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나는 우리가 갈아 끼운 몇 백 무더기의 심장을 묻은 무덤 앞에서 쓸쓸해 보이는 너는 바라봤지 네가 갈아 끼워 준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는데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게 저절로 죽어 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지 그래서 신과 함께 지내던 방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더는 신을 위해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몇 세대에 걸쳐 제물로 희생되어 온 사람에게 말해 주었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며 그동안 자신이 바친 심장들을 돌려 달라고 칼을 쥔 채

 

  오직 사람만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는 걸 아느냐고 부르짖으며 내 가슴을 도려내어 심장을 꺼내 씹어 삼켰지 제단 앞에서

 

  너는 쓰러진 나의 육체를 끌어안았다 그때 우리의 심장의 위치가 달랐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서로의 변방이었다고 나는 이방인처럼

 

  신에게 제물을 바치려고 변방을 찾아온 어느 이방인처럼 

  내가 갈아 끼워 준 너의 심장에서 숲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신이 개입하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전문(p.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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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3-여름(29)호 <issue 핫 서머 더비>에서

  * 이기현2019년『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