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떠도는 바닷새 외1편/ 박일만

검지 정숙자 2023. 10. 19. 01:00

 

    떠도는 바닷새 외1편

         제부도 26

 

     박일만

 

 

  이름도 잊었다

  남쪽 어느 섬에서나 먹힐 것 같은 차림새로

  여기까지 왔다

  물빛에 비춰볼 때마다 태생이 아득했다

  먼 남쪽 섬에 식솔들 두고

  밥벌이로 도회지 떠돌다 종내는 여기 왔다

  시장기를 달래려고 뛰어드는 물속

  얼굴 담글 때마다

  까치발을 하고 키를 높여야 했다

  떠밀리면 끝장인 세상까지 내몰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내 하나

  바닷가에서 외로운 옷을 걸치고

  착하게 물질하고 있다

  정신 줄 놓고는 시대의 먹구름 지날 수 없다

  해종일 물밑에 발 담그고 서서

  주린 배를 채우려는

  남녘이 고향인 저 바닷새

  낯선 땅에 날개 접고 뿌리 없이 살아간다

     -전문(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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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곶이 무덤

        제부도 50

 

 

  도시에 나가

  차에 깔려 죽어 묻혔습니다

  그 해 남자는 붕붕거리는 시인이었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성장통을 앓았습니다.

  태를 잘라 묻은 자리,

  무덤가 풀들은 야멸차게 잘도 자랐으나

  별들이 수없이 다녀간 후 빛이 바랬습니다

  살았으면 잘 익은 중년이 되었을 머릿결입니다

  언덕을 가꾸며 아이들과 시처럼 살고 싶다던 깃발은

  해풍에 찢겨 나부낍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사람들 가슴에 남는 시를 쓰고 싶다던 다짐이

  바람처럼 바다를 떠돌다 와서

  훌쩍 자란 풀숲을 가지런히 쓸어 올립니다

  눈매가 시 같던 사내

  몸집이 섬 같던 사내

  줄에 묶인 배처럼 흔들리는 머리를 바다 쪽으로 두고

  바람에 몸을 씻고 사는 섬 끝에 처연하게 누웠습니다

  시동을 걸고 붕붕거리던 시에 치여 죽어 돌아와

  바다를 일구며 바위처럼 살고 있습니다 

     -전문(p. 92-93) 

 

    * 故 홍기윤 시인의 墓地 · 詩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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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사랑의 시차』에서/ 2023. 9. 20. <서정시학> 펴냄

  * 박일만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사람의 무늬』『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뼈의 속도』

『살어리랏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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