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민왕기_먹구름 속 산책자여, 이제 곧 비가···(발췌)/ 냉담 :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23. 9. 16. 03:10

 

    냉담

 

    길상호

 

 

  달이 얼어붙어 금이 간 뒤로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습니다

 

  거울이 더 두꺼워져

  어제의 내게도 성에가 피고

 

  한 방울 한 방울 깊어지는 웅덩이

 

  볼륨을 줄여 밤새

  쓸쓸한 음악을 틀어 놓았습니다

 

  귀신과 키스를 나누고 나서

  하루 정도 더 버틸 용기를 얻었습니다

 

  창문도 커튼도 모두 입을 닫은

  이 방의 고요를 사랑합니다

 

  멀리멀리 퍼져가는 웅덩이

 

  기습 한파가 닥칠 예정이니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놓으랍니다

 

  혀 위에 굴리던 딱딱한 노래는 

  다 녹아 사라지기 직전입니다

 

  똑똑똑 또독, 끝도 없이 이어지는 노크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까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전문-

 

  먹구름 속 산책자여, 이제 곧 비가 내릴 겁니다/ 길상호 작품론(발췌) _민왕기/ 시인

  시인은 「냉담」에서 말했다. "달이 얼어붙어 금이 간 뒤로/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더 두꺼워져/ 어제의 내게도 성에가 피고// 한 방울 한 방울 깊어지는 웅덩이" 얼어 금이 간 달, 성에가 낀 자신, 그리고 깊은 웅덩이는 차갑고 깜깜하다. 꽁꽁 언 연못, 냉담冷潭이 꽝꽝 언 연못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시인은 있거나 그렇게 변한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한번 몰락하거나 추락한 것이 아니라 또다시 '한 방울 한 방울' 차츰차츰 더 어둡과 차가워지는 것은 견디지 어려운 일이다.

  그 상태는 "볼륨을 줄여 밤새/ 쓸쓸한 음악을 틀어 놓"고 "귀신과 키스를 나누고 나서/ 하루 정도 더 버틸 용기를 얻"는 것이다. "창문도 커튼도 모두 입을 닫은/ 이 방의 고요를 사랑"하지만 "혀 위에 굴리던 딱딱한 노래는/ 다 녹아 사라지기 직전"이다. 그러므로.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까/ 문을 열 수 없습니다"라며 산책자는 문을 걸어 잠근다.

  이것은 상실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유배나 고립은 견딜 수 없는 상실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실연일 수도 있고 깊은 상처일 수도 있다. 병이 와 누운 몸일 수도 있다. 산책자의 마음은 그윽하지만, 부유하는 자의 마음은 음울하다. (p. 시 76-77/ 론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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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3-1월(5)호 <포커스/ 신작시> 에서 

  * 길상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외 4권,

  * 민왕기/ 2015년 『시인동네』로 등단, 시집『아늑』『내 바다가 되어 줄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