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신상조_최근 시의 낯선 풍경들(발췌)/ 물질이론 : 변희수

검지 정숙자 2023. 9. 15. 02:12

 

    물질이론

 

     변희수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책상 위의 돌을 쓰다듬어 주었다

 

  정신에 고무된 자가 되어

  물질을 돌보기 시작했다

 

  손길을 가지게 된다면

  죽어서도 죽지 않는 물질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드디어 물질을 이해했구나

  나는 이제 성질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어느 먼 강가의 돌멩이 속에서

  들려올 것 같은 목소리로

 

  아침마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너와 내가 끝까지 남은 성분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뭐가 되지?

  돌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돌보는 자가 되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서로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손을 너무 타서 반질거리는 두 개의 물질이

  거기 놓여 있었다

     -전문(p. 47-48)

 

  ▶최근 시의 낯선 풍경들(발췌) _신상조/ 문학평론가

    경계 밖의 시/ 표피적 피상성의 디스피아적 사물과 미소하고 정치精緻한 유토피아적 사물

 

  시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책상 위의 돌을 쓰다듬어 주는 화자의 행위를 제시하면서 시작한 후, 돌봄을 받던 대상으로서의 돌이 화자를 돌보는 주체로 역전되면서 화자가 돌을, 돌이 화자를 돌보는 상호 돌봄의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서로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는, 손을 너무 타서 반질거리는 두 개의 물질은 화자와 돌을 동시에 가리키는 것이다.

  정신에 고무된 자가 물질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물질을 이해'하고 물질의 목소리를 듣고, 나아가 돌보던 존재에서 돌봄을 받는 대상이 되는 과정은 '돌 되기'라는 생성의 철학에 따뜻하면서도 심오한 정서를 덧입힌다. 무엇보다 "돌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는 화자의 다짐은 사물을 타자화하는 논리적 사고의 방식이 아니라 침묵과 직관이라는 동양적 여백의 정신으로써 사물에 대한 인식의 상투성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p. 시 47-48/ 론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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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3-1월(5)호 <기획특집> 에서

   * 신상조/ 문학평론가, 201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붉은 화행』, 산문집『시 읽는 청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