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루시/ 문정영

검지 정숙자 2023. 8. 23. 23:20

 

    루시

 

    문정영

 

 

  2021년 10월 16일 서른 즈음 루시는 상큼하게 타올랐지 

  우주에 어린 나이테를 두르자, 하루 1억 광년씩 자라는

  내가 너의 가슴에 심어둔 꽃 이름의 플랫폼들

 

  루시가 대기권 밖으로 나가자, 내 왼쪽 눈이 서늘하였어

  태양계의 형성이 어찌 되었는지, 지구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걸 알아내는 통찰력으로 내 사랑은 어찌 증명할 것인지

  나의 잃어버린 시력은 찾아올 것인지

 

  사랑은 체온보다 빨리 뜨거워지고, 우주보다 더 모호해서

  그녀가 없는 12년 동안 나의 안압은 계속 높아질 것인데

  루시가 보내는 욕망의 구성 물질, 질량, 밀도, 크기, 온도가

  나의 백지에 그려지겠지

 

  300만 년 전 원시 인류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애칭으로 불렸던 루시, 지구에서

  그때의 별들은 가난한 겉주머니 같아서, 사랑은 식물성이었을 뿐

  지금의 루시는 태양계 바깥에서 광합성의 연서를 몇억 광년마다

  화해하듯 보내오겠지

  목성의 붉은 띠처럼 언제 다시 열애할까

  지구는 한 겹 옷을 벗고 있는데

    -전문(p. 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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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2-1월(3) <시-움> 에서

  * 문정영/ 1997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두 번째 농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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