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문정영
2021년 10월 16일 서른 즈음 루시는 상큼하게 타올랐지
우주에 어린 나이테를 두르자, 하루 1억 광년씩 자라는
내가 너의 가슴에 심어둔 꽃 이름의 플랫폼들
루시가 대기권 밖으로 나가자, 내 왼쪽 눈이 서늘하였어
태양계의 형성이 어찌 되었는지, 지구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걸 알아내는 통찰력으로 내 사랑은 어찌 증명할 것인지
나의 잃어버린 시력은 찾아올 것인지
사랑은 체온보다 빨리 뜨거워지고, 우주보다 더 모호해서
그녀가 없는 12년 동안 나의 안압은 계속 높아질 것인데
루시가 보내는 욕망의 구성 물질, 질량, 밀도, 크기, 온도가
나의 백지에 그려지겠지
300만 년 전 원시 인류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애칭으로 불렸던 루시, 지구에서
그때의 별들은 가난한 겉주머니 같아서, 사랑은 식물성이었을 뿐
지금의 루시는 태양계 바깥에서 광합성의 연서를 몇억 광년마다
화해하듯 보내오겠지
목성의 붉은 띠처럼 언제 다시 열애할까
지구는 한 겹 옷을 벗고 있는데
-전문(p. 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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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2-1월(3)호 <시-움> 에서
* 문정영/ 1997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두 번째 농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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