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숨어 있는 불/ 박무웅

검지 정숙자 2023. 8. 23. 23:07

 

    숨어 있는 불

 

    박무웅

 

 

  숨어 있는 불을 아시는지

  한 겹 식은 재를 덮어쓰고

  숯의 내재율 속으로 들어가

  고요히 풀무질을 기다리고 있는

  대장간 화덕 속의

  숨어 있는 불

 

  오늘같이 으슬으슬 몸이 추운 날엔

  그런 숨어 있는 불이 생각난다

  조금만 바람을 쏘여도

  파랗게 살아나는 불 한 줌을 얻어다

  불씨로 쓰고 싶다

 

  그런 불 얻어다

  힘찬 풀무질로 활활 살려서

  제멋대로였던 옛날의 내 성질을 다듬을 수 있고

  아직도 치솟는 이 무모無謀

  땅땅 두들겨 온순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무딘 쇠를 순응하게 하는

  일하는 불로 쓰고 싶다

 

  그러나 싸늘하게 식은 줄 알았던

  내 속을 부젓가락으로 파헤치면

  거기 검은 숯덩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숨은 불씨 몇 덩이 아직 있다

 

  부드러운,

  아주 부드러운 입김으로

  누군가 후후 불어만 준다면

  다시 파랗게 되살아나는

  봄볕 같은 불씨가

  두근두근 숨 쉬고 있다

    -전문(p.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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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2-1월(3) <시-움> 에서

  * 박무웅/ 1995년『심상』으로 등단, 시집『패스 브레이킹』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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