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불
박무웅
숨어 있는 불을 아시는지
한 겹 식은 재를 덮어쓰고
숯의 내재율 속으로 들어가
고요히 풀무질을 기다리고 있는
대장간 화덕 속의
숨어 있는 불
오늘같이 으슬으슬 몸이 추운 날엔
그런 숨어 있는 불이 생각난다
조금만 바람을 쏘여도
파랗게 살아나는 불 한 줌을 얻어다
불씨로 쓰고 싶다
그런 불 얻어다
힘찬 풀무질로 활활 살려서
제멋대로였던 옛날의 내 성질을 다듬을 수 있고
아직도 치솟는 이 무모無謀를
땅땅 두들겨 온순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무딘 쇠를 순응하게 하는
일하는 불로 쓰고 싶다
그러나 싸늘하게 식은 줄 알았던
내 속을 부젓가락으로 파헤치면
거기 검은 숯덩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숨은 불씨 몇 덩이 아직 있다
부드러운,
아주 부드러운 입김으로
누군가 후후 불어만 준다면
다시 파랗게 되살아나는
봄볕 같은 불씨가
두근두근 숨 쉬고 있다
-전문(p.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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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2-1월(3)호 <시-움> 에서
* 박무웅/ 1995년『심상』으로 등단, 시집『패스 브레이킹』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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