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권리
장석주
강가에는 띄엄띄엄 똬리를 튼 뱀들,
저토록 아름다운데 제 귀함을 모르다니!
야생의 윤리가 서늘한 자연을
새벽마다 마주한다, 맨발로 뛰어오는 강의
고요한 심장과 소용돌이의 눈을,
갈대와 수생식물, 그리고 수면을 박차고
솟구치는 버들치와 참붕어와 쏘가리!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강인지를 규명한 뒤
나쁜 날씨와 좋은 날씨를 다 품어 안는
강의 권리를 말하는 게 옳겠지.
강은 가시성에거 눈부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급류와 바람이 강을 빚는다.
그렇다면 대지의 제약 아래 강의 운동성이
병약하거나 창백하다곤 할 수 없겠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윤리라도 있다면
그건 수달의 노래를 듣는 귀가 있는 까닭이겠지.
핏빛 석양으로 강의 뺨이 붉어지고
영리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마주한다. 서쪽 하늘이 변하는 경이를,
꿀과 맥주에서 위안을 구하던 시절이 지나면
간혹 그날을 그리워할 때도 오겠지.
바람을 안고 물결 뒤집으며 흐를 강의 권리,
강과 함께 달려가며 우연과 정직성을 깨달을 권리,
저것이 우리가 누릴 권리의 전부라면!
- 전문(p.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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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23-여름(90)호 <신작시>에서
* 장석주/ 1979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몽해항로』『오랫동안』『일요일과 나쁜 날씨』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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