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내용
이미산
빗방울 하나가 부지런히 달렸고
지상에 닿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까맣고 하얀
비명들
부릅뜬 눈동자에서
차곡차곡 모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잘린 혀가 방향 없이 기어다녔다 빌딩이 네온사인과 가로수의 흔들림과 아이의 웃음소리가 잠깐 머물렀다 누군가의 휘파람이 떠돌던 먼지가 주머니의 숨겨진 눈물이
합류했다
1퍼센트 환상과 99퍼센트 확신으로 키워낸
무지개가 지워지는 사이
행운보다 빠른 불운과
불운의 미각을 깨우는 지하의 시간이 전리품을 수거하듯
서두르는 사이
익숙한 듯
한때는 무지개를 유혹했을 검버섯 피어난 손들이
허공나라의 병정처럼
빗방울 주위를 에워싸는 사이
눈을 감기며 천천히 식어가는 가슴 위로
오래된 촉감이 씌워지고
거두어가는 마지막 움직임은
높낮이 없는 자장가처럼
투명했다
-전문(p. 13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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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23-여름(53)호 <이 시인을 묻는다/ 자선 근작시> 에서
* 이미산/ 경북 문경 출생,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아홉 시 뉴스가 있는 풍경』『저기, 분홍』『궁금했던 모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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