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기차
안영희
가까스로 서울행 기차에 올라
유리창 무심코 바라보다가 헉 소스라치네,
커다랗고 짙붉은 서녘 해에
종일토록 경작했던 하루가
성급히 스러져가는 먼 수수밭이네
저문 江이 한사코 기차를 따라오지만
어두워지는 저 강물 빛, 저 강의 얼굴이
이제는 슬프지 않네. 저 강물을 만나며 내가 울었던 건
···사람 때문이었네
그러나 이 저녁 어둠 밀물 쳐 든 막막 허공에
동 동 동동···
이승인 듯 저승인 듯 따라오는 둥근 저 燈불은
다정하지 못한 운명, 축복의 등 비출 일 없는
남은 내 길을 위로하고 싶은
그 사람인가
부고도 없이 죽은 그 사람인가
-전문(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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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3-여름(178)호 <중견시인 신작시> 에서
* 안영희/ 시집『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1990)로 등단, 시집『영원이 어떻게 꽃 터지는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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