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저녁 기차/ 안영희

검지 정숙자 2023. 6. 25. 02:03

 

    저녁 기차

 

    안영희

 

 

  가까스로 서울행 기차에 올라

  유리창 무심코 바라보다가 헉 소스라치네,

  커다랗고 짙붉은 서녘 해에

 

  종일토록 경작했던 하루가

  성급히 스러져가는 먼 수수밭이네

 

  저문 江이 한사코 기차를 따라오지만

  어두워지는 저 강물 빛, 저 강의 얼굴이

  이제는 슬프지 않네. 저 강물을 만나며 내가 울었던 건

  ···사람 때문이었네

 

  그러나 이 저녁 어둠 밀물 쳐 든 막막 허공에

  동 동 동동···

  이승인 듯 저승인 듯 따라오는 둥근 저 燈불은

  다정하지 못한 운명, 축복의 등 비출 일 없는 

  남은 내 길을 위로하고 싶은

 

  그 사람인가

  부고도 없이 죽은 그 사람인가

     -전문(p. 184)

 

   --------------------------

  * 『문학과창작』 2023-여름(178)호 <중견시인 신작시> 에서

  * 안영희/ 시집『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1990)로 등단, 시집『영원이 어떻게 꽃 터지는지』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