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사람이어서
홍순영
신부님은 말씀하셨지
우리가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아직도 사람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들어올래?
자맥질하던 새들이 문을 열어줬지만
우리는 회전문 입구에서 자꾸 쓰러지고
칼날처럼 우리 사이에 스며든 물이 어느샌가 넘쳤고
일부는 얼어갔다
살얼음 낀 자리가 마침내 우리의 경계
활짝 열린 결빙의 세계가 내 눈을 멀게 한다
나는 뒤뚱뒤뚱 불안을 짚으며 나아간다
앞에는 자신이 딛고 선 바닥 온도를 체감하려는 듯
요지부동인 발이 있었고
얼지 않은 새의 일생이 그 곁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우리는 경직된 시간을 싫어해서
우리는 매일 쪼개지고
새가 솟구칠 때마다 쏟아지는 포말 아래
얼음 속 슬픔의 뿌리를 풀어주고 있는 붉은 발목 서넛
해빙의 바람이 건너올 때 너는 해빙되고 있었나
나는 헤엄치는 너의 곁으로 미끄러진다
나는 아직도 사람이어서
-전문(p.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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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3-봄(15)호 <시마詩魔 1> 에서
* 홍순영/ 2011년 『시인동네』로 등단, 시집『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장류장의 오후』『오늘까지만 함께 걸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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