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이후
복효근
겨울 난 텃밭 기금치 푸른 잎을
직박구리 날아와 뜯어먹는다
괘씸한지고
쫓아버리고 밭이랑에 그물을 덮을까 하니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직박구리는 쪼잔타쪼잔타 짖어쌌는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 교사가 승진 발령 받았다는 소식에
숱한 비굴을 감내하고 얻은 그 자리에
소심란 화분 하나 보내 엿먹일까 하다가
에라이, 수선화 구근이나 한 포기 더 심자
포기한다
전지가위 들고 마당가에 웃자란 매실나무 앞에 서니
몽올몽올 맺힌 매화 몽우리에
곧바로 항복한다
퇴직한 지도 세 해가 되었으니 한두 군데 끊을까
후원 계좌 앞에 두고 핑계를 찾다가 겨우 하나 줄였다
새는 아직도 은행나무 위에서 울고
봄은 더디 온다
내 잘한 게뭐 있나 애써 찾으니
그나마 승진하지 않은 일
쓰디쓴 위로로 한나절이 간다
-전문(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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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2023-여름(70)호 <시에 시> 에서
*복효근/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당신이 슬픈 때 나는 사랑한다』『예를 들어 무당거미』『중심의 위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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