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명퇴 이후/ 복효근

검지 정숙자 2023. 5. 25. 02:31

 

    명퇴 이후

 

    복효근

 

 

  겨울 난 텃밭 기금치 푸른 잎을

  직박구리 날아와 뜯어먹는다

  괘씸한지고

  쫓아버리고 밭이랑에 그물을 덮을까 하니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직박구리는 쪼잔타쪼잔타 짖어쌌는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 교사가 승진 발령 받았다는 소식에 

  숱한 비굴을 감내하고 얻은 그 자리에

  소심란 화분 하나 보내 엿먹일까 하다가

  에라이, 수선화 구근이나 한 포기 더 심자

  포기한다

  전지가위 들고 마당가에 웃자란 매실나무 앞에 서니

  몽올몽올 맺힌 매화 몽우리에

  곧바로 항복한다

  퇴직한 지도 세 해가 되었으니 한두 군데 끊을까

  후원 계좌 앞에 두고 핑계를 찾다가 겨우 하나 줄였다

  새는 아직도 은행나무 위에서 울고

  봄은 더디 온다

  내 잘한 게뭐 있나 애써 찾으니

  그나마 승진하지 않은 일

  쓰디쓴 위로로 한나절이 간다

    -전문(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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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2023-여름(70)호 <시에 시>  에서

  *복효근/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당신이 슬픈 때 나는 사랑한다』『예를 들어 무당거미』『중심의 위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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