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 「첫사랑」
최설
우리 반에서 딱 한 명, 여중에 배정받은 나는
몰랐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서
여학교에 근무하는 국어 교사가 될 줄은
두 딸을 낳아 기르고
수천의 딸들을 기억하게 될 줄이야
정말 몰랐다
비 오고 눈이 되었다가 어느새 쨍쨍한
너와 나의 마음
오늘 창밖은 그렇게 변덕스러운데
너는 변덕 아니고 소중하니까
조금만 버티고 있어 줄래?
이렇게 작고 보드랍고 따사로운 우리들은
중딩이고 나도 여전히 여중생이라서
내 마음 종종 나도 몰라
그토록 쉽기도 어렵기도 한 우리들의
마음을 들어 줄 수 있을까
그런 너와 나의 이야기
두 딸 재인 효인과 휘녀들의 이야기였다가
모든 중고등학생들의 숨겨 둔 마음이기를
오늘도 배꽃같이 하얗게 웃는 너희들
앞으로 또 얼마나 환한 여러분을 만나게 될까?
그렇게 너의 마음을 곱게 읽고 싶어
-전문(p.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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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성당 오빠 말고 선생님
열 살이면 극복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한 살 어린 학원 동생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목소리가 들릴락 말락
무대 위의 회장 오빠
이국의 목소리처럼 말 한마디도 고민했어요
희고 환한 나의 국어 쌤
시를 좋아한 건 쌤 덕분이죠
첫사랑들 모두 안녕하신지
그때의 여학생이 묻는 밤
-전문(p. 80)
* 블로그註: 위 <시인의 말>은 詩가 아닌 말 그대로 <시인의 말>입니다. 진솔하고도 아름다운 <시인의 말>로 느껴져 시와 나란히 '공간'을 안배했습니다. 참고로 <표2> 또한 아래에 적어 두기로 합니다.
최설
⦁⦁⦁
몇 번을 검사해도 ENFP, 늘 새로운 것에 룰루랄라 신이 나는 사람. 초중고를 다니는 내내 꿈이었던 국어교사가 된 뒤 대학원에 들어가 시를 연구했고, 『현대시』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모두가 어디서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이 소망의 한가운데에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시를 만나길 바라며 『윤동주 시 함께 걷기』를 썼고, 시를 즐기길 바라며 이 시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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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청소년 시선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에서/ 2023. 4. 14. <(주)창비교육> 펴냄
* 최설/ 2015년『현대시』로 등단,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 시 읽기 『윤동주 詩 함께 걷기』(2017,서정시학)를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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