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내 어머니/ 양은선

검지 정숙자 2023. 4. 26. 02:35

<창간 20년간 소수정예 신인을 배출한 『시로여는세상』 사람들의 특집> 中

 

    내 어머니

 

    양은선

 

 

  능소화 꽃잎이 바닥을 쓰는 모진 여름날엔

  먼저 간 아들이 생각나 맥없이 하늘만 바라보시던 어머니

  이런저런 속내를 평생 감추고 툭툭 거친 말만 솟아내시던

  어머니의 봄날에도 몇 알의 침묵이 생겼다.

 

  약속의 뒷등을 보시기라도 하듯 늘 말씀하신다.

  야 야 오십 넘어봐라. 금방 육십 되고 금방 칠십 된다.

  사는 것 별것 없다 너무 애쓰지 마라

  그냥 하루하루 해지는 쪽으로 머리 베고 누우면 그게 행복이지

  부처의 옷깃처럼 가볍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저 깊은 속내를

  나는 모르고 산다

 

  바삐 살다가 문득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어머니

  오래 묵어서 한 줄기 바람처럼 헤어질 인연일지라도

  당신은 오늘의 빛이고 나만의 고향이고 싶습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눈동자 속엔 살얼음 같던 생이 사라지고

  마른 갈대 속을 더듬는 바람처럼 추레하다

 

  오늘도 배부른 산 능선의 허리를 베고 누워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가는 어머니의 눈과 귀

  홀로 시간을 더듬는 저 마음 고리에도 가을은 오고 있는가?

    -전문(p. 181-182)

 

   -----------------------

  * 『시로여는세상』 2021-겨울(80)호 <특집 2/ 시로여는세상 창간 20년 > 에서

  * 양은선/ 2007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