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무거운 게 싫다/ 양선희

검지 정숙자 2023. 4. 26. 02:23

 

    무거운 게 싫다

 

    양선희

 

 

  엄마 말 떨어지기 무섭게

  오빠, 나, 여동생, 남동생

  눈에 불 켜고

  무거운 것, 샅샅이, 찾네.

 

  엄마 손 때 심한 것

  엄마 수족 같아진 것

  엄마가 자식 보듯 보는 것

  다 무겁네.

 

  엄마의 날들

  깨지고, 찌그러지고, 칠 벗겨지고

  얼룩진 기억들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것들

  싹 내다 버리네.

 

  형제자매들은 온라인에 죽치고 열렬히 가벼운 거 찾네.

  가벼운 게 뭐지?

  쓰기 쉬운 거?

  부담 없는 거?

  버리기 쉬운 거?

  있어도 없는 거 같은 거?

 

  가벼운 건 속이 비었대.

  가벼운 건 속이 깨끗하대.

 

  마른 나팔꽃 씨앗 같은 거.

  물총새 깃털 같은 거.

  누에 입에서 내는 실 같은 거.

  곡기 끊고 세상 뜬 사람 몸 같은 거.

 

  누가 달랑 들고 가도 모르게

  가벼워진 엄마의 거처에서

  꿈자리 바꾼 이부자리 펴고

  못 뻗던 발 쭉 뻗은 동생들과

  양털구름 좋네, 새털구름 좋네.

 

  가벼운 것 예찬하는

  무거운 마음

    -전문(p. 64-65)

 

   ----------------------

  * 『시로여는세상』 2021-겨울(80)호 <신작> 에서

  * 양선희/ 1987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봄날에 연애』『그 인연에 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