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승하_분단에서 이산으로,···(발췌)/ 마지막 본 얼굴 : 함동선

검지 정숙자 2023. 4. 11. 01:47

 

    마지막 본 얼굴

 

    함동선

 

 

  물방앗간 이엉 사이로

  이가 시려 오는 새벽 달빛으로

  피란길 떠나는 막동이 허리춤에

  부적을 꿰매시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어떻게나 자세하시던지

  마치 한 장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한 시오리 길

  산과 들판과 또랑물 따라

  나루터에 왔는데

  달은 먼저 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 부적은

  땀에 절어 다 떨어져 나갔지만

  보름마다

  또랑물의 어머니 얼굴 두 손으로 뜨면

  달이 먼저 손을 씻었다

     -전문-

 

   분단에서 이산으로, 이산에서 통일로(발췌)_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황해도 연백은 38선 이남이고 휴전선 이북이다. 1930년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해월리에서 태어난 함동선(1930~ )은 '분단시선집'이라는 부제를 붙여 2013년 『한줌의 흙』을 내는데 자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휴전 전해의 가을이었던 것 같다. 강화도에 갔다가 미군 탱크부대에 들러 망원경으로 고향을 본 일이 있다. 넓은 들녘엔 누런 벼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도는 이미 추수가 끝났는데, 지금부터 가을걷이를 해볼까 하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때 마을 동쪽 끝의 우리 집 부엌문에 흰옷이 드나든다. '어머니다' 하는 생각에 눈물이 망원경을 흐리게 한 일이 있다. 그 어머니가 올해 118세이다.

 

  마을 동쪽 끝의 우리 집 부엌문으로 흰옷 입은 이가 드나드는 것을 본다. 시인은 그분이 어머니라고 그때 확신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설사 아니었다고 해도 흰옷 입은 영상이 한평생 시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고 있다. 어찌 그 모습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시인은 월남한 이후 한국전쟁을 겪고, 휴전 후 미수복지구가 되어 가볼 수 없게 된 고향과, 그 고향을 지키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어언 아흔의 나이를 넘겼다. 시집의 제1부 제목이 '연백'인데, 전부 다 고향 이야기다. (p. 시 109/ 론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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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2-여름(12)호 <시詩 읽는 계절>에서 

   * 이승하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뼈아픈 별을 찾아서』『생애를 낭송하다』『예수 · 폭력』등, 산문집『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등, 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