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 정끝별

검지 정숙자 2023. 4. 8. 01:33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

     -히에로니무스 보스 풍으로

 

    정끝별

 

 

  한 번 먹으면 일 년을 버틸 수 있다는 악어가

  열대 늪지대에 사는 브라질 악어 수백 마리가

 

  가뭄에 쫓겨 떼 지어 물웅덩이에 몰려들어

  웅덩이 개펄을 파고들며 심연처럼 뒤엉켰다

 

  여기가 마지막 물웅덩이일지 몰라

 

  살려고 몰려드는 끝은 개펄처럼 판독이 불가하고

  죽지 않으려 몰린 사지는 끝의 끝처럼 단순하다

 

  돌진하는 중력의 블랙홀처럼

 

  줄어드는 밥그릇을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때 우리는

  서로에게 흉기가 된다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고

 

  인간마저 잃고 뼛속까지 이빨만 남아

  제 이빨로 저를 물어 모두의 끝을 보고 만다

     -전문(p.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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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詩魔』 2022-여름(12)호 <시마詩魔 여름 신작시>에서

  * 정끝별/ 1988년『문학사상』 신인 발굴에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봄이고 참이고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