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
-히에로니무스 보스 풍으로
정끝별
한 번 먹으면 일 년을 버틸 수 있다는 악어가
열대 늪지대에 사는 브라질 악어 수백 마리가
가뭄에 쫓겨 떼 지어 물웅덩이에 몰려들어
웅덩이 개펄을 파고들며 심연처럼 뒤엉켰다
여기가 마지막 물웅덩이일지 몰라
살려고 몰려드는 끝은 개펄처럼 판독이 불가하고
죽지 않으려 몰린 사지는 끝의 끝처럼 단순하다
돌진하는 중력의 블랙홀처럼
줄어드는 밥그릇을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때 우리는
서로에게 흉기가 된다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고
인간마저 잃고 뼛속까지 이빨만 남아
제 이빨로 저를 물어 모두의 끝을 보고 만다
-전문(p.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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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2-여름(12)호 <시마詩魔 여름 신작시>에서
* 정끝별/ 1988년『문학사상』 신인 발굴에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봄이고 참이고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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