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의식*/ 이경옥

검지 정숙자 2023. 3. 30. 02:04

 

    전의식*

 

    이경옥

 

 

  막 깨어난 병아리를 밟은 적 있다 여섯 살 적 병아리를 따라 뛰다 일어난 사고였다 엄마는 내 들을 손바닥으로 후려치셨고 증조할아버지 기다란 담뱃대는 엄마 어깨를 내리치셨다 병아리가 사람보다 중허냐, 호령하시며 눈꺼풀 파르르 떠는 어린 생명을 얼른 들고 뒤꼍으로 돌아나가셨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증조할아버지 뒷모습을 쫓으며 맞은 아픔보다 더 아릿한 아지랑이가 내 작은 몸 전신에 퍼지던 그 봄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싸리비질 자국이 정갈한 마당에서 어미 닭을 쫓아 뽀르르 달려가던 노랑 솜털 뭉치가 여적지 꿈에 나타난다

    -전문(p. 238)

 

   * 전의식前意識: 정신분석학에서, 비교적 쉽게 의식이나 기억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현재는 억압되어 있는 잠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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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봄(28)호 <사이펀 신작시> 에서     

  * 이경옥2020년『시와소금』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혼자인데 왜, 가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