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해수_'사랑'의 이해, 말과 마음 사이(발췌)/ 밤하늘에 너를 놓고 지나갑니다: 이재연

검지 정숙자 2023. 3. 29. 17:21

 

    밤하늘에 너를 놓고 지나갑니다

 

    이재연

 

 

  낮에는 돌 위에 돌을 놓았습니다

  지나간 사람이 놓은 돌 위에

  또다시 지나간 사람이 되어 돌을 놓았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나타나는 창가의 밤에서

  난독이 잉태하는 것을 어느 비문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름 없는 별자리를 지나가는 우리가

  지금 여기를 지나간다는 것 외에

  모든 것이 다 지나간다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만날 일은 없겠다 생각하고

 

  하염없음이 돌이 되어 돌을 낳았습니다

  조용히 돌 위에 돌을 놓았습니다

 

  누가 밤하늘에 너를 놓고 지나갑니다

  두 발로 두 손으로 어떻게 하늘을 걸고

  넘어질 수 있겠습니까

 

  햇빛을 가져오려고 바둥거리는 한적한 어느 오후를

  빈 의자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세상에 가지고 온 인연을 흥얼거릴 수야 있겠습니까

  인연이 적막이 된 이후

 

  당신은 천 명 중에 한 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만 명 중에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돌 위에 돌을 놓고 지나갑니다

     -전문-

 

  ▶ '사랑'의 이해, 말과 마음 사이(발췌) _전해수/ 문학평론가

  이재연의 시는 쓸모없거나, 현실에 유용하지 않은 비루한 것들을 불러내, "지나간 사람이 놓은 돌 위에" "다시 지나간 사람이 되어 돌을 놓"듯 사물의 마음에 마음을 옮겨 싣는다. 말은 필요하지 않다. 어떤 기원祈願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저 돌 위에 돌을 얹는 쓸모없는 행위일지라도 "세상을 발견"하고 "세상을 단념"하는 일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단념이 기도가 될 때, "밤하늘에 너를 놓고 지나가"는 일은 가능해진다. 그저 "숲"이 "나무"를 옮기듯 그것이 새건, 코끼리 인형이건, "숲의 윤곽을 가져오는" "어둠"의 일부라면, 사랑의 작은 몸짓도 시인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연의 시에서 "돌"은 쓸모없는 사물이 아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돌 위에 돌을 놓고 지나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들의 인연이 돌탑을 쌓아 비로소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적막"이 될지라도 적막은 신비가 된 이후에 더 이상 읽히지 않는 "난독을 잉태하는" "비문"을 추앙하지 않을 것이다. 도무지 읽히지 않는 마음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이재연의 시는 그 마음을 좇는다. (p. 시  102-103/ 론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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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봄(28)호 <신작 소시집> 에서        

  * 이재연/ 전남 장흥 출생,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 2012년 <오장환 신인문학상> 수상, 시집『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 전해수/ 2005년『문학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목어와 낙타』『비평의 시그널』『메타모포시스 시학』『푸자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