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오어사의 원효와 혜공
윤동재
원효가 오어사 요사채
혜공의 방을 찾아
자신이 쓴 금강삼매경론을 보어주며 읽어보라 했네
혜공은 나는 무문자경이나 읽을 줄 알지
문자경은 읽을 줄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네
원효는 혜공도 이젠
문자경도 읽어야 한다고 하며
금강삼매경론을
다시 혜공의 턱밑까지 들이밀었네
원효는 또 혜공에게
얼마 전 자기 손자가
신라 사신으로 일본국에 갔더니
일본국 사람들이
원효의 손자라는 걸 알고
원효가 쓴 금강삼매경론을 읽고
원효를 직접 뵙지 못한 것을
깊이 한탄했는데
원효의 손자라도 만나니
더없이 기쁘다고 하더라며 자랑했네
혜공은 원효의 얘기를 듣다가
벌컥 화를 내고
그동안 원효의 법력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그게 아니구나 하며
집어 들고는
아궁이로 던져 버렸네
원효가얼른 아궁이로 가서
금강삼매경론을 도로 집어 와서는 혜공에게 한 마디하기를
혜공은 늘 알음알이가 없는 중생도 득도할 수 있다며
그깟 알음알이가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알음알이에 끄달려 알음알이를 내려놓지 못하는 중생에게는
금강삼매경론이 득도의 가장 좋은 방편이라 했네
그러자 혜공이 벌떡 일어나
네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눈 똥이 내 물고기다 외쳤네
원효도 뒤질세라 벌떡 일어나
네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눈 똥이 내 물고기다 외쳤네
-전문(p.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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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學 史學 哲學』 2022-겨울 · 2023-봄 (71-72)호 <문학_겨울 특집 7인 시선>에서
* 윤동재/ 1982년『현대문학』 시 추천 완료, 시집 『아침부터 저녁까지』『날마다 좋은 날』『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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