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귀향 외 1편/ 김상미

검지 정숙자 2023. 2. 17. 03:25

 

    귀향 외 1편

 

    김상미

 

 

  친정 오듯 집으로 들어서지만

  반기시는 어머님

  뒷모습이 쓸쓸하시다

  키 큰 사위 웃음 맛보시는 게

  소원이신 어머님

 

  어쩔거나

  주머니 가득 불효만 담고서도

  어머님 주름 안에

  안기고 싶어

  틈만 나면 귀향을 서두르니

 

  식탁 모퉁이에 사철 타는

  꽃을 꽂고

  마당으로 밀리는 햇살 무늬에

  그윽한 세상사 읊조리며

  어머니, 당신처럼 늙고 싶은데

 

  어쩔거나

  잠긴 목줄기로 훅훅 바람만 삼켜

  가슴안엔 온통 떨어진 꽃잎들로

  어수선하니

 

  그래도 어머님

  천천히 그 꽃잎

  한 잎 한 잎 주우시어

  독 안에 가득 술 담그시어

  

  어쩔거나

  시집 안 간 딸자식

  친정 오듯 귀향길 흥이나

  돋우어주자고

  해마다 예쁜 잔에 따라주시니

 

  어머님, 당신 손길

  묵묵하심이

  항상 그 자리인 듯하여

  틈만 나면 이렇듯 귀향을 서두르니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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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인의 노래

 

 

  1

  도시는 자라고 나는 역류한다 방으로 책상으로 카펫 밑으로 침대 속으로 익사한 시들처럼 부풀려진 도시가 들어온다 흘러들어온다 내가 다니던 도시의 골목길 아스팔트가 차들이 건물들이 흘러넘친다 플래카드 한 장 붙어 있지 않은 내 가슴에서 눈에서 거울 속에서

 

  2

  나는 로봇이다

  시키는 대로 한다

  도시의 외침 어두운 실험실 비정한 치유

  그곳에 쭈그려 앉아

  자라고 또 자라는 도시의 풀처럼

  아무 곳에나 씨를 뿌린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는 구급차

  내 피를 팔기 위해

  먼 대양을 건너간 아버지

  그래도 피는 남아돈다

  깨끗이 씻을수록 더 붉어지는 피

 

  3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도시의 계단을 오른다 상승은 아름답다 계단 끝에 서면 구두를 닦고 화장을 하고 최신 도시의 판매대 앞에 서서 한 권의 시집을 살 것이다 방금 인쇄소에서 꺼내온 신선한 시집 밥 대신 그 활자들을 씹고 씹을 것이다 도시는 나를 낳고도 계속 자라지만 나는 로봇이다 어린 소녀를 강간하지도 아이 밴 여자를 탐하지도 않는 도시의 칼끝에 찔린 평화이다

 

  4

  도시의 금고는 흘러 흘러넘치지만

  내겐 방이 한 칸뿐이다

  그방에서 나는 그레고리 잠자의 불안을

  타이프로 친다

  타이프지를 채우는 진지한 그림자

  젊어서 죽은 시인들이

  활자에 묻은 내 눈물방울들을 털어낸다

  비틀거리는 책상 위로

  심연의 겉칠들이 벗겨진다

 

  5

  그래도 나는 이곳이 좋다 어마어마하게 자란 도시의 거미줄에 걸려 충격도 없이 소리도 없이 벗겨지는 내 심연을 바라보는 것이, 그 무중력 상태의 위협에 몸을 굽히는 것이, 기웃기웃 잠들지 못한 시들이 수백 수십억의  점으로 나를 분리, 분산시키는 불같은 이 도시가, 타자기 위의 인공 낙원이, 텅 비어 말이 없는 친구들의 적의가, 그 축축한 백지들이 이 도시, 이 지옥의 사계를 비벼대는 것이, 비벼대면서 한 송이 거대한 무공 위를 천연덕스럽게 워킹, 워킹 스탭해 나가는 것이    

    -전문(p. 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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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복간본)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에서/  2022. 12. <문학동네> 펴냄
  * 김상미/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검은, 소나기떼』『잡히지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갈수록 자연이 되어 가는여자』, 박인환문학상 ·  지리산문학상 · 전봉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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