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들 ▼
황미현
몇 마리 오리들이
얼음에 갇혀 있다
강기슭에 얌전히 매어져 있다
언제부터 오리들이 강기슭이 묶어 기르는
가금家禽류가 되었나
노란 입들이 매듭처럼 묶여 있다
흰 건반에 우울한 악절들처럼
공손해진 깃털
작은 알에서 서서히 굳어졌으니
금형金型 제품이겠구나
이리저리 굴려 포란했으니
빙빙 도는 선회를 배웠겠구나
오리들은 날이 풀릴 때까지 물갈퀴를 쉰다
날짜변경선을 넘지 않고도 툰드라지대를 지나지 않고도 오리들은 여름 한 철에서 물러나 겨울 도래지로 이동을 했다
그곳은 간이매점이 긴 휴업에 든 곳
칠 벗겨진 벤치들이 을씨년스러운 곳
색 바랜 회전목마들이 얌전하고 바람 빠진 풍선 간판이 방향도 없이 펄럭거린다 유원지들은 이 도시의 위성처럼 빙빙 따라 돈다 돌면서 귀퉁이가 깨지고 빛바랜 사진들 속으로 다 강제수용된다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 속으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먼 곳까지 빛나던 것들이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다
그곳엔 누렇게 바랜 유원지가 있던 곳이었지만
찾다 찾다 결국엔 찾지 못하는
한 장의 사진들처럼
유원지들은 사라진다
풀어진 강물을 헤집고 다니던 오리들
딱 하루만 따뜻해져도 좋아
둥둥 떠오르다 사그라든 풍선이 마지막 자가호흡을 끝내듯
사람들의 방문이 끝난 강기슭엔
얼음 언 달만 환하다
그곳에 오리들의 겨울 도래지가 있었다 지난봄에는 매점주인인 사내가 흰 페인트를 오리들에게 칠해주고 있었다 부드럽게 부서지는 붓끝을 막 빠져나온 오리들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그래, 날아갈 듯만 했고
결국 삐걱거리는 물을 휘저으며
여름을 났다
-전문(p. 104-106)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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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22-12월(396)호 <신작특집> 에서
* 황미현/ 2019년 『시작』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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