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힘 외 1편
김춘리
덩어리는 어떤 계명입니다
얼굴이 어떤 습관인 것처럼
우리는 한때 입술이 없어서 아가미를 붙이며 가족이 되었죠
같은 입술에서 나온 습관으로
롯의 여자는 소금기둥이 되고
우리는 피를 씹고
모서리를 잃어버립니다
모든 사람을 연민하였고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덩어리를 떨어뜨렸을 때
간격은 지워집니다
반창고보다는
스테이플러로
금이 간 덩어리를 깁도록 하겠습니다
초인종 같아서 누르면 저녁이 나옵니다
핏줄 가진 것들
두드리면 안 돼요
칼로 다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입술은 얼굴을 쉽게 설명하는
팸플릿 같은 것입니다
(p.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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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과 큐브
모래밭에 엎드린 자세로 볼 거야
바닷바람은 멀리서 보면 오징어 같았어
희극적이었고
해변이라는 큐브를 맞추고 말 거야
(배가 올 거야)
4×4×4 퍼즐에서
5×5×5 퍼즐로 바꾸었을 때
SNS에 거짓을 연습하던 여자와
토끼 이빨 조각을 맞추던 남자의
독백을 받아 주던 물거품
해변은 창백한 목덜미 같아
목덜미를 내어주며 맹세했었지
맹세할수록
심장이 모래 같았지
타 오르거라!
타 오르거라!
개머리 능선을 밟고
모래밭에 엎드린 자세로 타 오르거라
사슴 똥을 주우며 타 오르거라
너는 여전히 엎드린 자세로 큐브를 돌리고
(배가 올 거야)
모래 위에 시간을 적고
평면을 만져 볼 수 있을까
해변이라는
비극은 아니니까
모래라는 큐브니까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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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평면과 큐브』에서/ 2023. 1. 9. <한국문연> 펴냄
* 김춘리/ 강원 춘천 출생, 2011년 《국제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모자 속의 말』, 공동시집『언어의 시, 시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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