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부고를 받고/ 서하

검지 정숙자 2023. 2. 6. 01:13

 

    부고를 받고

 

    서 하

 

 

  '이○○ 시인 별세, 코로나로 조문 사절'

 

  펑펑 내리는 저 눈발에 뛰어든

  부고는

  그이의 유고遺稿였을까요

  도무지 믿기지 않은 그 부음,

  떫은 땡감 베어 문 듯 생목 올라

 

  '서하 시인 사망, 코로나로 조문 사절'

 

  나의 유작을 중얼거려 봅니다

  이승을  벗듯이 옷가지 벗고

  뚜껑 없는 관곽으로 들어가 누우니

  죽음이 빙 둘러쌉니다

 

  비수같이 등짝에 꽂혔던 문장에

  나도 잊어버린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죽음도 숨을 쉬는지

  추깃물이 뽀글거립니다

 

  혼자 쓰는 죽음이 점점 빼곡해집니다

 

  오래 만지던 죽음이 한눈파는 사이,

  잘 씻은 알몸의 주검이

  벌떡 일어나 길고도 짧은 유작에

  방점을 꾹 찍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인"의 부음을 받고 "내리는 눈발에 뛰어든 부고는/ 그이의 유고遺稿였을까요"라고 슬퍼하는 시인은, 곧 자신의 유작에 대해 상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는데, 이 죽음의 상상 체험이 위의 시의 내용을 이룬다. 우선 그는 "옷가지 벗고/ 뚜껑 없는 관곽에 들어"간다. 그러자 "죽음이 빙 둘러"싸기 시작한다. 죽음이 그의 상상 세계를 "점점 빼곡"하게 채우고, 이 죽음을 만지면서 시인은 "혼자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는 "비수같이 등짝에 꽂혔던 문장에/ 나도 잊어버린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통스럽고 상처가 되었던 기억이 '문장'으로 부활하고, 이 문장은 잊어버렸던 시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로 전환된다. 이는 그가 잊고자 했던 상처가 그의 정체성   '이름'  이었음을, 죽음을 가상 체험하면서 그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의 "길고도 짧은 유작"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바로 그의 내부에 죽어 있었던 그 정체성, '알몸의 주검'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시인의 상상이 스스로의 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데로 이끈 것이다. (p. 시 76/ 론 116-117(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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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에서/ 2023. 1. 13. <걷는사람> 펴냄

  * 서 하/ 경북 영천 출생, 1999 『시안』으로 등단, 시집『아주 작은 아침』『저 환한 어둠』『먼 곳부터 그리워지는 안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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