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받고
서 하
'이○○ 시인 별세, 코로나로 조문 사절'
펑펑 내리는 저 눈발에 뛰어든
부고는
그이의 유고遺稿였을까요
도무지 믿기지 않은 그 부음,
떫은 땡감 베어 문 듯 생목 올라
'서하 시인 사망, 코로나로 조문 사절'
나의 유작을 중얼거려 봅니다
이승을 벗듯이 옷가지 벗고
뚜껑 없는 관곽으로 들어가 누우니
죽음이 빙 둘러쌉니다
비수같이 등짝에 꽂혔던 문장에
나도 잊어버린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죽음도 숨을 쉬는지
추깃물이 뽀글거립니다
혼자 쓰는 죽음이 점점 빼곡해집니다
오래 만지던 죽음이 한눈파는 사이,
잘 씻은 알몸의 주검이
벌떡 일어나 길고도 짧은 유작에
방점을 꾹 찍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인"의 부음을 받고 "내리는 눈발에 뛰어든 부고는/ 그이의 유고遺稿였을까요"라고 슬퍼하는 시인은, 곧 자신의 유작에 대해 상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는데, 이 죽음의 상상 체험이 위의 시의 내용을 이룬다. 우선 그는 "옷가지 벗고/ 뚜껑 없는 관곽에 들어"간다. 그러자 "죽음이 빙 둘러"싸기 시작한다. 죽음이 그의 상상 세계를 "점점 빼곡"하게 채우고, 이 죽음을 만지면서 시인은 "혼자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는 "비수같이 등짝에 꽂혔던 문장에/ 나도 잊어버린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통스럽고 상처가 되었던 기억이 '문장'으로 부활하고, 이 문장은 잊어버렸던 시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로 전환된다. 이는 그가 잊고자 했던 상처가 그의 정체성 '이름' 이었음을, 죽음을 가상 체험하면서 그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의 "길고도 짧은 유작"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바로 그의 내부에 죽어 있었던 그 정체성, '알몸의 주검'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시인의 상상이 스스로의 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데로 이끈 것이다. (p. 시 76/ 론 116-117) (이성혁/ 문학평론가)
-----------------------------
* 시집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에서/ 2023. 1. 13. <걷는사람> 펴냄
* 서 하/ 경북 영천 출생, 1999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아주 작은 아침』『저 환한 어둠』『먼 곳부터 그리워지는 안부처럼』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성에서/ 김춘리 (0) | 2023.02.07 |
---|---|
추분 외 1편/ 서하 (0) | 2023.02.06 |
로만셰이드 외 1편/ 변영희 (0) | 2023.02.04 |
귤빛부전나비/ 변영희 (0) | 2023.02.04 |
대나무꽃을 보셨나요 외 1편/ 임경하 (0) | 2023.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