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미연_'신춘시'의 딜레마, 몸집 줄이기와···(발췌)/ 고부에 머무르며 : 이가림

검지 정숙자 2023. 2. 1. 20:00

   

    고부에 머무르며

 

    이가림(1943-2015, 72세)

 

 

  알 수 없는 부자유의 밤 속에서

  휩쓰는 낫에 베어지는 풀잎들이 있다.

  바가지로 바가지로 설움의 물을 퍼올리며

  끝끝내 잠자지 않는 노여움의 뿌리가

  무식하게 곡괭이를 들고 무식하게

  도끼를 들고 일어나 위협하는 바람을무식하게

  이마와 어깨로써 막아내고 있다 아아

  하나뿐인 참사랑도 허물어지고 험상궂은

  능욕당한 흉터만 남아 있다 모시적삼의

  누이여 우리나라의 눈물이여

    -(p. 125)

 

   '신춘시'의 딜레마, 몸집 줄이기와 존재/ 이가림의 시세계(발췌) _김미연/ 문학평론가, 진주교대 강사

  이가림 시인은 1943년 만주 출생으로 성균관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하고 프랑스 루앙대학에서 불문학 박사를 받았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부문에서 「빙하기氷河期로 등단했다. 첫 시집 『빙하기』를 비롯하여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슬픈 반도』 등의 시집과 『촛불의 미학』, 『물과 꿈』, 『꿈꿀 권리』 등의 역서를 발간했다. 1993년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고 인하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정년했다.

  이가림의 경우 1966년 신춘문예 당선과 함께 신춘문예 출신들이 모여 발간한 <신춘시> 동인으로 활동한 이력이 시인의 출발과 신인 시기의 시적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하나의 주요한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요행히 <신춘시> 16집(1968)과 18집(1969)을 헌책방에서 구입하고 긴 시간 서가에 꽂아 두었는데 마침 이가림의 자료를 찾는 동안 이를 찾아 먼지를 털고 접혀진 부분을 조심스레 펴 60년대를 대표하는 시 동인지를 읽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p. 118)

 

  역사의 고장 고부에 머무르며 녹두장군 전봉준을 떠올리며 동학농민혁명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형상화는 아주 세밀하다. "휩쓰는 낫에 베어지는 풀잎들"(민중)이나 "노여움의 뿌리가/ 무식하게 곡괭이를 들고 무식하게/ 도끼를 들고", "이마와 어깨로써 막아낸다"는 구절들이 민초와 역사의 생생한 현장을 짚어내고 내고 있다. 이 시는 역사의 현장에서 '모시적삼의 누이'를 거론하며 눈물의 뒤안길을 조명해 낸다. 이 정도면 시가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것이라 할 만하다.(p.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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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2022년 겨(88)호 <현대 시인 열전 -20/ 이가림 편> 에서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