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소금의 키/ 전순영

검지 정숙자 2023. 1. 18. 01:09

 

    소금의 키

 

    전순영

 

 

  눈을 빌려주기로 했던 큰집에서 안 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무리 형제지간일지라도 솥단지가 따로 걸리고 나면 어쩔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소금이 되기로 했다 소금을 모으는데, 흙도 바위도 산도 강물도 모래도 자갈도 풀잎도 꽃도 나무도 들어와 눕고

 

  농부도 어부도 장사꾼도 막노동자도 청소부도 지게꾼도 언챙이도 절름발이도 말더듬이도 벙어리도 기술자도 회사원도 선생도 연구원도 박사도 한 솥에 들어와 누웠다

 

  불꽃이 튀고 있는 가마솥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소금덩이가 크레인에 걸려 나왔다 다시 끓는 기름통에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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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속 실핏줄들이 동앗줄로 죄 일어서서···

 

  소금을 끓인 물이 천 도가 될 때 거기에다 몸을 담그면 소금의 키가 천정처럼 쑥쑥 올라와 하늘의 심장 땅의 심장 바다의 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소금의 무게가 백 킬로그램일 때 천 킬로그램의 전투기 KF  21 밑에(2022년 7월 19일) 들어가 누웠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부추를 썰어 넣은 맑고 은은한 재첩국처럼, 세계인이 입맛을 다시는 KF  21

     -전문(p.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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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학』 2023. 1 - 2월(611)호 <신작시> 에서

  * 전순영/ 1999년『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시간을 갉아먹는 누에』『숨』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