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김후란
생애 끝에 오직 한번
화사하게 꽃이 피는
대나무처럼
꽃이 지면 깨끗이 눈 감는
대나무처럼
텅빈 가슴에
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
바람에 부서지는 시간의 모래톱
벼랑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단 한 번 누부시게 꽃피는
대나무처럼
-전문-
▶자연을 사랑하는 김후란 시인 이야기/ 청미靑眉(발췌)_ 이정현/ 시인
<청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시동인이다. 2014년에는 '청미' 50주년 기념총집(1963~2013)이 만들어졌다. 첫 장을 여니 '사진으로 보는 청미 50년'의 푸른 눈썹이 홍매화처럼 곱다. 「문학의 집 · 서울」 정원에서 찍은 사진 뒷줄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경희 · 허영자 · 추영수 · 김선영 · 김후란 · 김혜숙 · 임성숙 7분의 동인들 모두 다 기품이 흐른다. 어디 그뿐이랴. 열정으로 가득 찼으나,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고매한 인품이 사진 속에서도 배어난다. 한복과 원피스는 물론 양장을 멋지게 소화해 내는 '청미' 동인의 맵시와 미모에 놀라고, 60년 가까이 지켜온 단단한 동인의 힘에 나는 또 놀란다. 시인은 "처음 출발 때는 작품 성향을 의식하지 않고 막연하게 모였으나 동인지 발간을 계속하면서 청미 동인들의 작품이 표현은 주지적인 자유시로서 각자 강한 개성을 보였지만 대체로 새로운 서정시에 속했다."고 했다. 또 '청미'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문인 중 조병화 선생님은 "좋은 마을에서 좋은 우물을 같이 마시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라며 동인의 즐거움을 노래했고, 박두진 선생님은 '청미' 30주년을 맞아 "문학 그 중에는/ 별의 나라 시/ 해의 나라, 달의 나라/ 빛의 나라 시/ 너무 멀고 높다높아/ 노랫소리 안 들리고,/ 우주 전체 억의 억만/ 이글대는 햇덩어리/ 빛과 빛의 살의 포옹/ 넋의 포옹 영겁,/ 눈물 펑펑/ 사랑 펑펑/ 시의 나라 만세."라는 축시로 마음을 내놓았다.
이제 '청미' 기념 총집에 실린 시인의 육필 시 「소망」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생애 끝에 오직 한 번/ 화사하게 꽃이 피는/ 대나무처럼 ···(중략)···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단 한번 눈부시게 꽃피는/ 대나무처럼" 시인의 시사랑은 대나무처럼 곧다. 각 신문사(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부산일보)의 언론인으로서, 한국여성개발원장,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자금관리위원장의 위치에서, 정부공직자윤리위원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 등 시인의 대나무결 마디 마디마다 향기가 번져, 지금도 바람 부는 날이면 시인에게서 청량한 대숲 소리가 들릴 것이다. (p. 시 111/ 론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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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2-봄(173)호 <연재7 이정현 시인의 시인 만세> 에서
* 이정현/ 강원 횡성 출생, 2007년『수필춘추』로 수필 부문 & 2016년『계간 문예』로 시 부문 & 2022년『시와 편견』 평론 부문 등단, 시집『살아가는 즐거움』『춤명상』『풀다』가 있고, 시전집『라캉의 여자』, 산문집『내 안에 숨겨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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