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팬 한 줄기 보리 이삭 외 1편
박정자
이웃 아파트 높은 담벽 아래
시멘트 포장 틈새
길가에 팬 한 줄기 보리 이삭!
어디서 왔을까?
왜 하필 이런 곳에서?
내 질문 들리기라도 하는지
대답할 생각은 있기나 한지
도무지 알 수조차 없지만
녹색 잎도 그럴싸해 보이고
옹골찬 이삭엔 긴 수염까지 달고
제대로 패었다
아, 너를 너를 어쩌면 좋으냐?
-전문(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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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손수건과의 이별 연습
연분홍색 톤의 잔무늬가 있는
손수건을 빨아 널면서 보니
좀 낡아 보이던 곳에
드디어 해진 구멍이 드러났다
내일 하루만 더 쓰고 버리자'
다음날 새벽 산행에서 돌아와
땀으로 흠뻑 젖은
바로 그 손수건을 들고
쓰레기봉투 쪽으로 가다 말고
세면대에서 조물조물 빨기 시작했다
다시 건조대에 널고 보니
구멍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그래, 하루 더 쓰자'
'어쩜 또 하루 더 쓸지도···'
-전문(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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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숲은 아프다 하는데』에서/ 2022. 11. 25. <월간문학출판부> 펴냄
* 박정자/ 단기 4277년(1944) 충북 영동 출생, 1979, 1987년 월간『신동아』 논픽션 당선, 1994년 월간『한맥문학』 시 당선, 시집『사람의 숲』『꽃탑』1~10권, 『백두민족』『코로나19의 강』 등, 단편소설집『초록색 연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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