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길가에 팬 한 줄기 보리 이삭 외 1편/ 박정자

검지 정숙자 2022. 12. 30. 02:57

 

    길가에 팬 한 줄기 보리 이삭 외 1편

 

    박정자

 

 

  이웃 아파트 높은 담벽 아래

  시멘트 포장 틈새

  길가에 팬 한 줄기 보리 이삭!

 

  어디서 왔을까?

  왜 하필 이런 곳에서?

 

  내 질문 들리기라도 하는지

  대답할 생각은 있기나 한지

  도무지 알 수조차 없지만

  녹색 잎도 그럴싸해 보이고

  옹골찬 이삭엔 긴 수염까지 달고

  제대로 패었다

 

  아, 너를 너를 어쩌면 좋으냐?

      -전문(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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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손수건과의 이별 연습

 

 

  연분홍색 톤의 잔무늬가 있는 

  손수건을 빨아 널면서 보니

  좀 낡아 보이던 곳에

  드디어 해진 구멍이 드러났다

  

  내일 하루만 더 쓰고 버리자'

 

  다음날 새벽 산행에서 돌아와

  땀으로 흠뻑 젖은

  바로 그 손수건을 들고

  쓰레기봉투 쪽으로 가다 말고

  세면대에서 조물조물 빨기 시작했다

 

  다시 건조대에 널고 보니

  구멍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그래, 하루 더 쓰자'

  '어쩜 또 하루 더 쓸지도···'

   -전문(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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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숲은 아프다 하는데』에서/  2022. 11. 25. <월간문학출판부> 펴냄

  * 박정자/ 단기 4277년(1944) 충북 영동 출생, 1979, 1987년 월간『신동아』 논픽션 당선, 1994년 월간『한맥문학』 시 당선, 시집『사람의 숲』『꽃탑』1~10권, 『백두민족』『코로나19의 강』 등, 단편소설집『초록색 연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