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음악당에서
김정임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새가 날아갔다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의 자유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까
바닥을 드러낸 연못은 깊고 깊은 잠의 무덤 같다
새가 떨어뜨리고 간 너의 시간이 그곳에서 한 번 더 눈을 감고
한없이 감으려고만 하는 눈동자는 천길 물속
멀리 떠 있는 별처럼
오래된 구름과 바람만이 그 앞을 조용히 지나간다
여름을 떠다니는 동안 숲은 끝도 없이 잎을 날려 보내고
네 피와 살이 닿았던 여름의 밑바닥이 존재의 허방처럼
비어 간다
오래 울다 가버린 뒷모습을 덮어주는 나뭇잎들
이제 그 무엇도 바라지 말자
어스름한 야외 음악당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끔씩 다시 되살아나는 네 곁을
조금 더 걸을 게
-전문(p. 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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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2-겨울(176)호 <2000년대 시인 신작시> 에서
* 김정임/ 2002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붉은사슴동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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