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손톱
허자경
내 몸속에 젖비린내가 자라던 시절 그녀의
손톱이 손톱으로만 보였다
그 손톱은 나의 허기의 울음을 잠재우는
쟁기였다
그 손톱은 들판의 밭고랑에 거름이 되어
감자꽃을 피웠다
우물도 팠다
그 손톱은 풍요의 자루가 터져버린 곳을
수선해주었다
때로는 빈 그릇을 긁는 것을 보았다
그 까닭에 이팝나무꽃 같은 고봉밥이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노모의 손톱에 봉숭아꽃 하나 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톱엔 십만 원짜리의
인공 벚꽃 손톱이 날마다 만개해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반달 손톱」의 1연과 2연에서 "내 몸속에 젖비린내가 자라던 시절 그녀의/ 손톱이 손톱으로만 보였다// 그 손톱은 나의 허기의 울음을 잠재우는/ 쟁기였다"고 묘사했다. 남달리 시인의 어머니만 자신의 손톱을 쟁기로 삼아 노동을 했을까. 아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손톱을 쟁기로 삼아 가정을 부양했으며, 그렇게 살신성인을 함으로써 기어이 '감자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고봉밥이/ 내 입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손톱으로 감자꽃을 피워 내거나 내 입속으로 고봉밥을 넣어주지 않은 어머니가 또 어디 있을까. 이처럼 허자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오늘 너의 이마에 내 지문을 입혔어』는 자기체험에서 비롯된 시의 주제를 객관화와 보편화하여, 독자들로부터 공감대가 형성되어 울림으로 다가가는 시집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p. 시 16/ 론 108-109) (심은섭/ 시인 · 문학평론가 · 가톨릭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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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오늘 너의 이마에 내 지문을 입혔어』에서/ 2022. 10. 10. <한국문연> 펴냄
* 허자경許慈婛/ 2000년 『시현실』 등단, 시집 『엉겅퀴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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