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팔자
김상미
어느 날, 아르튀르 랭보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시를 자신에게서 산 채로 잘라내버렸다. 로베르트 발저는 스스로 헤리자우의 정신병원으로 걸어들어가 이십칠 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고, 죽을 때까지 종이봉투만 접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꼼짝없이 사로잡힌 시라는 괴물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가스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처박아 넣었다. 아틸라 요제프는 먹고살기가 너무 막막해 달려오는 화물열차에 몸을 던졌다.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둔 이십팔 세의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생체 실험을 당했다. 산도르 마리아는 조국을 등지고 오랜 망명생활 끝에 "세상에 아첨하느니 사색하는 인간으로 사멸하겠다"며 권총 자살을 했다. 하트 크레인은 사랑이라는 환상을 쫓고, 좇다 무너진 탑이 되어 푸른 카리브해 김숙이 가라앉았다. 프리모 레비는 그 지독한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았으나,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사랑한 문학,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문학, 세사르 바예호의 시구처럼 '신神이 아픈 날 태어난' 팔자들이다.
나는 내가 나 같지 않고, 삶이 삶 같지 않고, 문학이 문학 같지 않고, 친구나 동료가 친구나 동료 같지 않고, 내가 알던 정의신념가치사랑 같은 숭고한 단어들이 내가 모르는 비릿한 단어들로 변해 세간에 마구 유통될 때,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져 온몸과 온 마음에 비통과 회한뿐일 때, 이 여덟 명의 작가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의 팔자를. 문학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더럽게 불운하고, 더럽게 치열하고, 더럽게 품격 있고, 더럽게 자존심이 강했던 그들의 팔자. 나 자신이 위로받으러 갔는데, 오히려 내가 감화되어 울고 나오게 되는 그들의 팔자. 그런 팔자임에도 그 지독한 불운과 죽음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들의 문학. 그 시퍼런 도끼날에 세례를 받고 오면, 내 팔자 또한 더럽게 춤고, 어둠고, 외롭고, 고달파도, 그들과 함께 계속 문학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뜨거운 피가 솟구친다. 그 어떤 곳보다도 팔자 사나운, 문학이라는 한 장소에서, 동시에!
-전문-
해설> 한 문장: 발견한다. 고백적 어조에 결연한 태도가 도드라져 뚜렷한 의도를 반영하는 시적 진술이다. 다소 장황하게 이 부분을 인용한 까닭은 문학과 시에 관한 시인의 입장 때문이다. 시인은 위로를 받고 감회되며 희망을 발건하게 해준 여덟 명의 문인을 내세운다. 각기 다른 삶과 문학을 산 이들이지만 "문학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더럽게 불운하고, 더럽게 치열하고, 더럽게 품격 있고, 더럽게 자존심이 강했던 그들의 팔자"를 느끼게 한다. 여덟의 전범典範은 시인에게 문학과 시가 자신의 운명임을 의뢰하는 대상이 된다. 단순한 동일시나 과장이 아니라 "그 지독한 불운과 죽음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들의 문학"니 던지는 "희망에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데서 비롯한다. 바로 문학이 생의 의지와 가능성의 "장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인 자신의 팔자소관이나 순명의 태도를 애써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생이 다하도록 나아가 죽음을 넘어서도 문학을 추구하겠다는 결연한 의식을 표출한다. 이러한 의식은 「내일의 시인」 속 "진정한 시인은 이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에 다시 태어나 버섯 향기 풍기는 비에 젖은 숲에서 달빛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시인관과 연결된다. 또한 "시란 내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달린 나의 문제'라는 시관과도 관련된다. 이러한 시인관과 시관에 앞서 "시를 모른다는 건 존재의 가장 큰 비극"이라는 인간관이 제시되어 있다. 삶의 최종심급이 시이며 이러한 시에 투신하는 시인이 최선이라는 입장의 표줄이다. 이는 철 지난 낭만주의의 반복이 아니다. "무정한 사람들"의 "슬픈 시절"에 "불쾌한 광기"가 떠돌고 "따분함"과 "무의미"가 장악한 "현대적인 것"을 넘어 "햇볕 잘 드는 창"을 열고서 "희망"의 "빛"을 갈구하는 수행이다. 그러니까 시를 쓰는 일은 시를 방기하고 시에 무지한 현대의 비극에 저항하는 실천 행위가 된다. (p. 시 32-33/ 론 124-125) (구모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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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에서/ 2022. 12. 2. <문학동네> 펴냄
* 김상미/ 1900년『작가세계』 로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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