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저녁연기/ 박희선

검지 정숙자 2022. 12. 7. 03:13

 

    저녁연기

 

    박희선

 

 

  찐 고구마 두 개

  두유 한 통으로

  복사꽃 그늘에서

  새참을 먹었다

  내 뱃속에서 밥 달라고 보채는

  청개구리 울음을 간신히 잠재웠다

 

  온종일 쇠스랑으로 감자밭만 장만하고

  빈 지게만 지고 돌아오는데

  누가 내 허리에 천 근 납덩이를 매달았나

  두 무릎에서는 자갈자갈

  자갈밭 밟는 소리가 너무나 아팠다

 

  산 그림자 속에

  외딴집 굴뚝에 저녁연기가 꿈처럼 올라간다

  지난겨울 큰 수술을 받은

  아내가 일어난 것일까

  아침에 차려주고 온 흰죽을 다 비웠을까

  잠자던 아궁이에 누가 불을 지피는가

 

  누군가 부엌문을 반쯤 열고 나와

  한 번만 웃어주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나

  봄 하늘 초승달이

  내 마음 먼저 알고 까르르 웃는다

      - 전문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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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2-겨울(172)호 <원로 중진 시인 신작시 특집> 에서

  *  박희선/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 시집 『녹슨 만포동』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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