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연기
박희선
찐 고구마 두 개
두유 한 통으로
복사꽃 그늘에서
새참을 먹었다
내 뱃속에서 밥 달라고 보채는
청개구리 울음을 간신히 잠재웠다
온종일 쇠스랑으로 감자밭만 장만하고
빈 지게만 지고 돌아오는데
누가 내 허리에 천 근 납덩이를 매달았나
두 무릎에서는 자갈자갈
자갈밭 밟는 소리가 너무나 아팠다
산 그림자 속에
외딴집 굴뚝에 저녁연기가 꿈처럼 올라간다
지난겨울 큰 수술을 받은
아내가 일어난 것일까
아침에 차려주고 온 흰죽을 다 비웠을까
잠자던 아궁이에 누가 불을 지피는가
누군가 부엌문을 반쯤 열고 나와
한 번만 웃어주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나
봄 하늘 초승달이
내 마음 먼저 알고 까르르 웃는다
- 전문 (p. 46)
--------------
* 『문학과창작』 2022-겨울(172)호 <원로 중진 시인 신작시 특집> 에서
* 박희선/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 시집 『녹슨 만포동』 외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날들이/ 이나명 (0) | 2022.12.09 |
---|---|
빨래터 여인/ 윤동재 (0) | 2022.12.09 |
지나고 보니/ 정옥임 (0) | 2022.12.05 |
고성 앞바다에서/ 강명수 (0) | 2022.12.05 |
서쪽/ 서주영 (0) | 2022.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