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열매*
이설야
마지막 술집 천장에서 이상한 열매가 흘러나왔다
벽에 적힌 HEAVEN AND HELL 글자 아래서
천사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기는 바람 속에서 툭툭 끊겼고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검은 벽 안쪽 천사들의 담배 연기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이상한 열매는 천장에 매달려 흔들리고
흑인 가수는 검은 노래를 계속 부르는데
누군가 다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았건만
아무도 없었다
검은 안개가 밤의 전차를 타고 가는 좁은 길이었다
죽음의 열매가 매달린 나무들을 지나 집에 갔다
티브이를 켜자
검은 여자들이 검은 아이를 업고 사막을 헤매는 뒤로
흰 구름을 삼키며 붉은 화염들이 국경을 넘어가고 있었다
-전문 ( p. 120-121)
* 미국 흑인 재즈 가수인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1915~1959, 44세)의 대표곡이다. 이 노래는 백인들에게 살해당한 후, 나무에 매달린 흑인 노예들의 사진을 본 시인 아벨 미어로폴이 시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를 쓰고 음악가 얼 로빈슨이 곡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후에 빌리 홀리데이가 이 곡을 불렀고 흑인에 대한 차별과 린치가 사라지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 『문예바다』 2022-가을(36)호 <이 시인의 징후독법 | 이설야 | 신작시>에서
* 이설야/ 2011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우리는 좀 더 어두워지기로 했네』『굴 소년들』『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선탈(蟬脫)/ 홍사성 (0) | 2022.11.13 |
|---|---|
| 아큐(阿Q)/ 김은상 (0) | 2022.11.11 |
| 얼레지 그녀/ 정선희 (0) | 2022.11.09 |
| 풍차로 살기/ 황주은 (0) | 2022.11.09 |
| 정박(碇泊)/ 이동희 (0) | 2022.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