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유리병 편지/ 신정민

검지 정숙자 2022. 11. 3. 01:00

 

    유리병 편지

 

     신정민

 

 

  해변을 걷는다는 건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쓰는 것

 

  뼈만 남은 새가 해변에 묻히고 있어

  모래는 덮으려 하고 바람은 들추려 하고

 

  하고 싶은 말과 참아야 할 말이 실랑이 같아서

 

  담아둘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말

  어린 상괭이 사체도 가까이에 있어

 

  까마귀들의 만찬과 함께

  내가 기다리는 편지의 단 하나 주소지는 이름 없는 바닷가

 

  다만 불행이 필요했노라, 모래알은 반짝이고

  결국 버리게 될 비단고둥껍데기는 줍고 또 줍고

 

  날개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갔을까

 

  투명한 아침이 묻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 속에 "다만 불행이 필요했노라"로 다소 격조 있는 감정을 드러내는 이 구절은 바로 흔적으로 대변되는 제 존재성을 제대로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과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짐작에서 오는 고통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지언정 그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이다. 존재의 멸절 그 자체에서 오는 공포와 슬픔을 흔적이 다 보여줄 수도 없고, 존재의 그 심오한 내면성을 흔적 자체가 담아내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흔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 불가피와 불가역의 심사! 그래서 제 흔적을 보듬고 쓰다듬을 수밖에 없는 처지. 이것이 인간 아닐까? 궁지에 처한 심정, 곧 "내가 기다리는 편지의 단 하나 주소지는 이름 없는 바닷가"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곤궁함이 인간 존재의 본질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신정민 시인은 바로 이것을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고 묻고 있다. 그렇다. 흔적이 되기 전의 실체로서 "날개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갔을까" 궁금해하면서, 시간의 풍화 속에 처단된 존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 자신에게 묻고 물어 "투명한 아침이 묻고 있다"라고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p. 26/ 론 132-133) (김경복/ 문학평론가 · 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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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의자를 두고 내렸다』에서/ 2022. 9. 30. <달을 쏘다> 펴냄

  * 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 출생,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꽃들이 딸꾹』『뱀이 된 피아노』『티벳만행』『나이지리아의 모자』『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