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규격론(規格論) 2/ 박수중

검지 정숙자 2022. 9. 3. 15:27

 

    규격론規格論 2

 

    박수중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10대 선조는

  루이 16세 시대 귀족의 반려견이었어요

  나는 강남 고층아파트에서 살고 작은 내 방도 있지요

  나는 주인을 거역하지 못하게 발톱을 아주 짧게 깎아 놨어요

  2주일에 한 번 청담동 전용 미용실에 갑니다

  내 하얀 털이 돌돌 말리면서 피부에 엉겨 붙어버리거든요

  다듬고 화장하고 20만 원 들어요

  나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고가의 심장사상충 예방조치를

  받아야 하지요

  나는 3, 4일에 한낮 입주 가정부에 끌려 반려 카페에 갑니다

  그녀는 내 입장료로 만 원을 내고 들어가

  스스로는 최하 만 원짜리 커피를 마셔야 되지요

  가족이 여행을 가면 나는 1박 30만 원 반려 호텔에 묵어요

  집과는 다른 알약 '특별 영양맞춤 솔루션'을 먹이로 제공받지요

  내 생일이 되면 주인은 20만 원 상당 주문 전용 축하 케이크를

  사들고 와요

 

  나는 가끔 주인에 끌려 양재천을 산책합니다

  걸으면서 절대 다른 개에 한눈팔 수 없어요

  나는 일찌감치 중성수술을 받았어요

  씨를 함부로 뿌려 족보의 회소가치를 망치면 안 되니까요

  수술대 위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어요

  내 귀한 후손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만 나는 웬일인지 눈물을 많이흘려요

  눈물 자국으로 눈 주위 얼굴 주변 털이 뭉쳐버리자

  주인의 뜻대로 미안용美顔用으로 눈물샘까지 제거당했어요

  나는 웃프게 웃프게도 더  이상 울 수도 없게 되어버렸어요

      -전문-

 

  해설> 한 문장: 일반적으로 고급 품종의 애완견의 경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보다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대면하게 된다. 차별화된 애완견의 외모를 위해 강제 교배가 시도되고 이로 인해 애완견이 겪는 유전적 질병은 온전히 애완견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러한 유전적 질병 이외에도, 애완견에게 가해지는 인간의 폭력적인 행위는 셀 수 없이 많다.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눈 주위의 털이 갈색으로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눈물샘"과 생식 기능마저도 중성화 수술을 통해 제거당하고 있는 현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애완견은 눈물을 흘리는 정서 기능의 표출이 불가능하며, 관람의 대상으로서만 취급되고 있다. 이때 애완견은 단지 "애완"의 신체 기능을 소유한 기계적 신체일 뿐이다. 애완견에게 눈물이란 곧 "나"의 본능적인 정서 표출의 한 방법이지만 수술로 기계적인 사물로 전락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반려견이 주인 혹은 대타자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개라는 종족이 지닌 생물학적 본능과 몸에 습속화된 야생성이 제거되어야만 행복이 보장된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시에서 나타나는 애완견의 신체의 파편화는 애완의 기능만 남겨지고 사물로 전락하는 과정이 섬뜩할 정도로 형상화되고 있다. 개가 야생성에서 벗어나 인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겪게 되는 일상은 혹독하다. 이 시를 통해 애완견의 운명이 공장에서 자동화된 설비 기계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과 같은 사물로 전락하는 비극적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p 시 20-21/ 론 112-113) (서안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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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물고기 귀로 듣다』에서/ 2022. 8. 15. <미네르바> 펴냄 

  * 박수중朴秀重/  황해도 연안 출생, 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꿈을 자르다』『볼레로』『크레바스』 『클라우드 방식으로』『박제』(戀詩集), 『규격론』(規格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