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나비물/ 유종인

검지 정숙자 2022. 8. 18. 03:02

 

    나비물

 

    유종인

 

 

  박수 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 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 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

  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

  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 주고도

  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

  세숫대야 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나선다

  뿌리거라, 길이 팍팍해서야 쓰겠냐

  흙꽃*에도 물을 줘야지

  최대한 물의 보자기를 펼치듯 헹가래를 치는 물

  마지막 박수는 이렇게 들뜬 흙먼지를 넓게 가라앉히는 일,

  수도꼭지가 박수쳐서 보낸 물의 여행은

  아직도 할머니 발등을 적시고 유전流轉하는 박수 소리로

  길을 떠나 사루비아 달콤한 핏빛에도 스며뒀으니

  실수하고도 박수를 받으면

  언젠가 갸륵한 일들로 재장구쳐 오는 날도 있으리라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 오는 저 물의 호접胡蝶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내내 환하다

    -전문-

 

    * 흙꽃: 흙먼지의 방언

 

  해설> 한 문장: 시집 『숲 선생』의 시적 사유는 유년 체험인 순수지각으로서의 기억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를테면, 인용시 「나비물」에서는 마당의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쏟아지던 물의 의인화로 박수 소리가 생동하는데, 물은 한 집안에서도 점차로 이동하며 그 쓰임새를 달리해서 만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고 나면 그것을 다시 할머니가 사용하는 방식은 아직도 유전流轉하는 박수 소리가 세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로써 재음미될 수 있는, 다시 말해 물활론적(hylozoism) 사유와 맞닿는다 할 것이다. 흙먼지의 방언으로 쓰인 흙꽃에게도 물을 주는 넉넉한 행위는 만물이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만물의 시초와 그로부터 탄생된 모든 심리작용은 운동으로 환원됨으로써 물질은 살아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 오는 물의 호접胡蝶은" 시인의 각성과 성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환한, 기쁨에 대한 기대가 물질의 탐색 과정 속에 묻어난다. 요약컨대, 청자이자 동시에 화자로 설정된 주체는 유년 주체이면서 어른인 '나'다. 고통과 슬픔의 세월을 관통하여 도달한 현재 즉, 전향된 그의 미메시스 능력을 발휘하는 지금의 모습이라 하겠다. (p 시 18-19/ 론 131-132) (김윤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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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숲 선생』에서/ 2022. 6. 28. <시인의 일요일> 펴냄 

  * 유종인/ 경기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 시 부문 & 2003년 ⟪동아일보⟫  시조 부문 2011년 ⟪조선일보⟫ 미술평론 부문 당선, 시집 『아껴 먹는 슬픔』『교유록』『숲시집』외 다수, 시조집『답청』, 미술책『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