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정국
안현미
목련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불투명과 반투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안개는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막 밤과 헤어진 강물은 새벽과 몸을 섞고 있었다 목련 앞에선 웃음도 울음도 없는 얼굴이 반쯤 파묻히고 있었다 먹히느냐 먹느냐 그것만으로는 정의되지 않았다 당국은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구하여도 구할 수 없었다 괴로워도 괴로웠다 목련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공정이냐 공정이 아니냐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았다 중대재해도 중대처벌도 중차대하지 않은 안개정국은 미래가 현재와 현재가 과거와 악수하듯 아침엔 주천강 점심엔 동강 저녁엔 한강으로 이름을 바꾸며 흘러갈 것이다 목련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불투명과 반투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안개는 흘러나오고 있었다 삶처럼 죽음처럼 죽음처럼 삶처럼
-전문(p. 104)
---------------------------
* 『현대시학』 2022. 7-8월(608)호 <신작시> 에서
* 안현미/ 2002년『문학동네』로 등단, 시집『곰곰』『이별의 재구성』『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깊은 일』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트트랙/ 박수빈 (0) | 2022.08.14 |
---|---|
시인수첩/ 김병호 (2) | 2022.08.14 |
담쟁이/ 윤정구 (0) | 2022.08.13 |
나를 지켜보는 나/ 휘민 (0) | 2022.08.10 |
풀은 꽃이 되지 못한다/ 손영 (0) | 202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