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양들의 밤/ 김박은경

검지 정숙자 2022. 8. 10. 00:58

 

    양들의 밤

 

    김박은경

 

 

  몽골의 유목민은

  도축할 양의 목에 작은 상처를 낸 뒤

  손을 천천히 집어넣어 심장을 쥔다

  양은 잠자듯 눈을 감는다

 

  그전에 먼저 양을 안아주어야지

  작은 음성으로 속삭여야 한다

  미안하다거나 용서해달라거나

  고맙다거나 안녕이라거나

 

  양은 무릎을 꿇고 쓰러지겠지

  유목민의 품에 안겼을 수도 있다

 

  배신은 흔한 일이다

  후회는 더욱 흔하지만

  예의는 유효한 태도

  척박한 삶,

  거처도 없이 떠돌다가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마다

  심장을 찾는 습관

 

  누군가 한 마리 양처럼 굴 때마다

  조심해, 다짐하는 말들

 

  별이 너무 많아서 무서운 밤

  없는 집을 향해 가는 길은

  병의 목처럼 좁아지고

  

  심장이 사라진 양들이

  작게 울기 시작한다

     -전문 (p. 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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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emPeople시인들』 2022-여름(창간)호 <신작시> 에서

   * 김박은경/ 2002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온통 빨강이라니』『중독』『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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