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양계장/ 박완호

검지 정숙자 2022. 6. 30. 01:24

 

    양계장

 

    박완호

 

 

  서가에 아무렇게나 꽂힌 책들처럼

  닭들이 양계장 바닥에 늘어져 있다

  가다가 서고 섰다가 가고

  졸다 걷다 푸드덕 날개를

  한껏 흔들어대기도 하며

  얼마 안 남은 생의 한때를

  퇴화한 감각으로나마

  결사적으로 확인해보는 것이다

  어두워지지 않는 세상에서의

  삶이란 얼마나 환한 절망인가?

  환하게 죽어가는 닭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닭대가리들이

  오늘을 제쳐두고 오로지

  다가오지 않을 내일만을 떠벌리는

  거짓 선지자의 기도문처럼

  반복적으로 땅바닥에

  굵어질 틈 없는 다리를 세워놓는다

  한 번도 읽지 않고 낡아버린

  책 속의 슬픈 이야기처럼

  닭들이 환한 불빛 아래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어떤 지상에서의 반나절

     -전문(p. 150-151)

 

   * 에스프리; 나의시_박완호>에서 한 구절/ "사람은 누구나 제 슬픔의 몫을 지니고 살아간다"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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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문학과 사람이 선정한 한국 유수의 시인들, 詩와 에스프리

  『내   2022. 6. 10. 초판 1쇄 <문학과 사람> 발행

  * 박완호/  1991년『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너무 많은 당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아내의 문신』『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내 안의 흔들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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