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악수/ 김희준

검지 정숙자 2020. 9. 16. 03:08

 

 

    악수

 

    김희준(1994-2020, 26세)

 

 

  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네 손아귀를 쥘수록 속도가 빨라졌네 빗방울에 공백이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숨일 것이네 속도의 폭력 앞에 나는 무자비했네 얻어맞은 이마가 간지러웠네 간헐적인 평화였다는 셈이지 중력을 이기는 방식은 다양하네 그럴 땐 물구나무를 서거나 뉴턴을 유턴으로 잘못 읽어보기로 하네 사과나무가 내 위에서 머리를 털고 과육이 몸을 으깨는 상상을 하네 하필 딱따구리가 땅을 두드리네 땅을 잃은 날 추령터널 입구에 수천의 새가 날아와 내핵을 팠던 때가 있었네 새의 부리는 붉었네 바닥에 입을 넣어 울음을 보냈네 새가 물고 가버린 날이 빗소리로 저미는 시간이네 찰나의 반대는 이단異端일세 아삭, 절대적인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 딸의 좌표가 연결되는 빗줄기를 잡느라 손은 손톱자국으로 환했네 물집이 터졌으나 손금에는 물도 집도 없었네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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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떄문』에서/ 2020. 9. 10. <문학동네> 펴냄

   * 김희준/ 1994년 경남 통영 출생, 경상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을 다녔다, 2017년 『시인동네』로 등단, 2020. 7. 24. 불의의 사고로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