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할 수 없는 아침
정창준
대부분의 아침은, 갓 구운 토스트처럼 까끌거린다. 생경한 악담처럼, 낯선 것들을 만지고 싶어 새로 돋은 수염을 쓸어 보는 아침. 수염의 집념을 배울 수만 있었다면 이미 혁명가가 되었겠지. 혁명가가 되지 못한 색약의 나는, 적색을 읽은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한 녹색을 얻은 것일 뿐. 고분고분한 이불을 접다가 바라본 창문 밖은 나뭇잎들이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는 계절,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은 지긋지긋한 젊음을 벗는 첫 단계, 식욕의 반대편에는 다른 욕망이 혐오 범죄처럼 도사리고 있지만 다행히 나는, 미투의 손가락질을 피해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위험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네가 주말을 보내고 싶어 했던 쿠바, 발리 그리고 코타키나발루의 다른 이름들, 빛나는 것들을 사랑하는 네 보편적 취향을 존중해. 핀란드산 가구만큼이나 쉽게 이해되는 네 취향을 사랑해, 그런데 너는 왜 날 사랑한 거니. 창백하고 돋보이지 않던, 밤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모든 경계를 나는 사랑해. 사랑하긴 했냐고? 말했잖아, 난 경계를 사랑해. 문 앞에 섰을 때의 설렘은 문을 여는 순간 사라지지. 문을 여는 건 너나 나지만 닫는 건 오직 나야. 분명한 건, 너를 떠난 후에야 네가 원하던 얼굴을 가질 수 있었지. 노르웨이 가구 같은.
강의 미래가 강이 아니듯 소년의 미래 역시 소년이 아니어서
모든 소년은 연대할 수 없는 죄를 은닉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아침
주름진 얼굴의 단독범이 수염을 만지며 창밖을 바라본다.
---------------- * 수요시 포럼 제15집『코보다 긴 수요일』에서/ 2018. 11. 20. <파란> 펴냄 * 정창준/ 2011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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