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삭흔/ 이혜미

검지 정숙자 2017. 11. 20. 21:48

 

 

    삭흔

 

    이혜미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오늘은 나무를

떠나왔고  아침에는 어제의 달무리에 집중했다. 두 번의 교차하던

밤과  낮.  기만과 거짓.  목을 다정하게  조여오던  손에게 더없이

친절해지던. 밤의  낮은  자리로  엎드리며  나는  순한  목소리가

되고  싶었다.  무해한  찰나의  지저귐으로  기울어가고  싶었다.

돌아서서 걷던 뒷모습으로. 단정한 등의 단면으로. 그러나 지금은

어지러운  거짓의  무늬를  더듬으며  분명해지는  시간.   어제의

뜨거웠던  손이  세상의  추위를  모아 데려올 수도 있다.  서로의

급소를  붙들며  무한을  말하였고  그건 순환하는 비명들 같았지.

술픔으로 부풀어가는 눈의 흰자위처럼. 계속해서 가까워지다 영영

멀어지는 수평선들처럼.  가장 빛나는 꿈을 목에 두르고 밤하늘에

조용히 매달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당겨 겪는 어둠이 글 짓는 이의

더러움을 환하게 비출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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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7-11월호 <신작시 광장>에서

 * 이혜미/ 2006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보라의 바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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