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글
정숙자
어느 시에서인들 그렇지 않으랴만 토씨 하나까지도 저울에 달
아서 쓰고자 했다. 약사가 중환자의 약을 짓듯이 0.01그램의 불
균형에도 어휘를 갈고 다듬었고 덜고 보태려고 해보았다.2000편
에 달하는 습작을 거쳤음에도 단시는 가쁜 숨결만 요구하는 악
산이었다. 악산이다. 여기 실린 단시 한 편 한 편마다 바쳐진
시간과 종이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단시는 짧다고만 되는 게 아니고 의미함축이 얼마만큼 되어
있느냐, 얼마만큼 말의 맛이 있느냐. 긴축․결정체가 이루어져
있느냐 등이 문제일 것이다. 그중 어느 하나가 부실해도 作品으
로서의 생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는 줄 안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한 실천적 결정에 있어서 ‘시도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시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변화는 시도로부터’ 라는 생각으로 출발한다. 변화가 발전 자체
는 아니지만 연결고리의 구실을 하는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또한, 나는 한 번 주어진 삶을 시문학에 바칠 각오로 살아왔
다. 앞으로도 시를 위해서 끝없이 정성을 바칠 생각이다.
그동안 나의 시공부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이 시집의 해
설을 써주신 김용직 선생님께, 책을 엮어낼 수 있도록 해주신
<한국문연>의 원구식 사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1994. 가 을.
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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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감성채집기』에서/ 1994. 10. 10. <한국문연>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