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음에
김남조(1927-2023, 96세)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이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전문-
▶한국문학 연대를 한 세대 더 늘려놓은 순열한 사랑(발췌)_이경철/ 시인 · 문학평론가
김 시인은 1948년 ⟪연합신문⟫에 시 「잔상殘像」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6.25 전쟁 와중인 1953년 피난지 부산에서 "무명의, 그러나 총혜聰慧로운 한 처녀가 있어 이에 한 권의 시집을 폐허의 조국과 질식된 문리文理에 고스란히 바쳐 드리려는 것"이란 문단 어른의 추천사와 함께 첫 시집 『목숨』을 선보인 이래 2020년 『사람아, 사람아』까지 19권의 신작 시집을 펴냈다. 해방 직전에 등단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시인 등에 바로 이어 한국 현대시단을 이끈 시인이 김 시인이다.
그런 김 시인을 한국 현대시사는 김소월, 한용운의 뒤를 이은 한국 연시戀詩의 큰 흐름으로 보고 있다. 연애시라 할지라도 한순간 가슴에 직격해 들어왔다 금시 사라지고 마는 언어들이 아니라 한국적, 유교적 전통을 잇는 해방 직후 세대 시인답게 정한情恨과 기품을 함꼐하며 인생론적, 종교적 깊이로 들어간 시인이란 평을 받는다.
*
우리네 사랑도 그렇지 않던가. 사랑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사랑하는 상대를 인간이면서도 신격으로 올려놓지 않던가. 그리고 '새벽 숲의 청아한 그 향기'로 우주 만물은 새롭게 살아나는 정령들로 보이게 하지 않던가. 그래 사랑은 제각각의 신화를 매양 우리 마음속에서 새롭게 되풀이 씌어지게 하지 않던가. 김 시인의 사랑시는 우리에게 사랑은 남녀 간의 간절함이요, 우주 만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생명이요, 신앙이며 그 모두가 이 시대 우리 가슴속에 순열한 감수성으로 씌어지고 있는 신화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 사랑의 시인 김남조 시인이 지난해 10월 10일 96세로 영면에 들었다. 몸은 물론 시나 말씀에도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청청해 백수는 훌쩍 넘길 것 같은 시인. 그래 망백望百을 향한 후배 문인도 젊디젊게 활동하게 해 우리 문학의 세대를 진정으로 늘려놓은 시인이 김남조 시인이다. (p. 시 132-133/ 론 132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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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여름(94)호 <김남조 시인 추모 특집/ 작가론> 에서
* 이경철/ 1990년부터 『현대문학』 등 문예지에 현장 비평적 평론 발표, 2010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저서『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미당 서정주 평전』『현대시에 나타난 불교』『허무의 꽃』등, 시집『그리움 베리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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