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최재언

검지 정숙자 2023. 9. 30. 01:24

 

    새로운 시작을 위해

 

     최재언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안 입을 옷이며 신지 않을 신발이며

  오래된 것들 미련 없이 버려야 하는데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놔두는 지난 것들

 

  옛 추억이 떠오르고

  기억에게서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것들을

  지금 버리지 못하면 훗날에는

  죽은 후에나 가능할 일인데

 

  부는 봄바람에

  아직도 설렘이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하니

  바람도 없는 늦가을날

  설레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무거운 것에 너무 미련을 두지 않기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전문-

 

  해설> 한 문장: 네델란드 출신이며 프랑스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coght, 1853-1890, 37세)는 "낡은 구두"를 화폭에 그리며 신발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 적이 있다. 낡은 구두는 곧 땀 냄새가 스며있는 현장의 기록이며, 걸어온 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색채로 비참한 주제를 특징으로 선보였다.

  화자에게는 옛 추억이 떠오르고 기억에서 버리지 못한 오래된 것들이 있다. 그것이 헌 옷이든 낡은 신발이든 "기억에서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것"이든 이제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은 내려놓아야 할 때임을 알아차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이 벗겨지지 않는 장화에 매달린 것처럼 벗겨지지 않으면 장화를 찢어야 할지도 모른다.

  "부는 봄바람에/ 아직도 설렘이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할지라도, "바람도 없는 늦가을날 설레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나를 붙잡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할 것을 다짐한다. 그 무거운 짐이란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이나 나태함일 수도 있다. 새 포도주를 위해 새로운 부대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비상해야 한다.

  화자는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타자를 응시하게 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일상적인 사물이든, 물질이든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사유를 얻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대상과 세계와 동행을 하게 된다. (p. 시 13/ 론 118-119) (이구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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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오래된 인연』에서/ 2023. 9. 15. <시작> 펴냄  

  * 최재언/ 2006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나,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