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목련이 피다/ 김근열

검지 정숙자 2023. 8. 6. 00:55

 

    목련이 피다

 

    김근열

 

 

  밤새도록 시를 쓰다

  사유도 없고 묘사도 없는

  여러 단어와 문장들을

  창밖을 내다보며 가래침 뱉듯

  수십 번도 더 뱉어내고 뱉어내었다

  떠난 뭉치들이

  이웃집 목련나무에 떡하니 걸려있는 것을

  아침 출근길에 나는 보고 말았다

  어젯밤 밖으로

  뭉개어 던져 버린 시어詩語

  내 흰 원고지 뭉치 속에서 피지 못한

  은유와 묘사가

  목련나무 가지에

  꽃봉오리 되어 슬며시 펼쳐지고 있는 것을

  시인이 완성하지 못한 비유를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자기만의 환유를 속삭여주고 갔는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달빛으로 은은한 묘사를 홀리고 갔는지

  아니면 대지의 신이

  적당한 울림을 들려주었는지

  내다 버린 내 단어가

  뱉어버린 내 문장이

  목련나무에서 詩가 되어

  한 잎 한 잎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살아감에 있어 우리에겐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고,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염원한다. 김근열 시인은 실존에 대한 탐구와 시를 쓸 때 이를 중요한 범주로 다루고 있다. 자기 인식을 통한 실존實存에로의 집중, 그리고 결핍에 관해 초점을 맞추어 이를 고백하고 기록, 진술하는 방법으로 시를 쓰며 전진해 왔다.

 

   (···) 

 

  밤새 시를 썼으나 매번 같은 마음일 순 없다. 사유도 묘사도 없는 단어와 문장들은 뭉개어 내다 버리는 게 다반사다. 어느 순간 詩가, 던져진 죽음처럼 조용하게 가라앉은 단어와 문장들이 목련 나무에 매달렸다. 떠나간 뭉치들이다. "흰 원고지 뭉치 속에서 피지 못한" 것들, 은유와 묘사가 "이웃집 목련나무에" 걸려있다. (略) 허기를 채워주듯 "한 잎 한 잎 환하게 피어나"는 희망 가득하다. (p. 시 18-19/ 론 185 (···) 188-189) (안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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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고요는 어떤 방인가』에서/ 2023. 7. 30. <시산맥사> 펴냄  

  * 김근열/ 충남 공주 출생, 2012년『영남문학』으로 등단, 시집『콜라병 속에는 개구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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