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즈/ 윤의섭

검지 정숙자 2023. 7. 6. 17:32

 

    오즈

 

    윤의섭

 

 

  나는 바람을 다룰 줄 아는 들판을 갖고 있다

  오늘은 무풍의 날

  먼 숲에서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달이 지켜보고 있다

  내가 소유한 것은 쓸쓸함이 만들어낸 가장 쓸쓸한 영지

 

  가슴에 들판이 있는 사람은 곧 무덤이다

  마법 같은 일이다 착한 마법이 아닌

 

  서서히 안개가 밀려온다 안개는 내일로부터 밀려온다

  불투명한 미래의 입자에 잠식되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잠이 든다

 

  북풍이 몰아치는 꿈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성문은 굳게 닫히고 성으로 향하는 황금길은 녹슬었다 이상하게도 폭풍은 고요했다

 

  양들이 풀을 뜯어 먹은 자리에선 다시는 풀이 돋지 않는다

  숲의 나무들이 쓰러지고 나면 새로 자라는 나무는 없다

  양들은 숫자를 셀 때마다 한 마리씩 사라진다

  이곳은 강력한 결계지

 

  오늘은 나의 들판을 들여다 보시라

  황량한 거리를 걷고 있는 뒷모습이 보이는 게 낯설지 않고

  무엇인가 헤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면

  사랑을 할 때도 사랑이 멈추지 않는다면

  당신도 들판을 갖고 있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어 햇살을 들이고

  커피를 마시다 문득 잊고 있던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저녁 약속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고 산책을 나서기도 한다

  이 모든 걸 달이 지켜보고 있다  

  연민의 눈동자다

     -전문(p. 151-152)

 

   ----------------------------

  * 『엄브렐라Umbrella』 2023년/ 봄-여름(vol·5_최종)호 <The Pick Poets/ 신작시>에서

  * 윤의섭/ 1994년『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외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이 있던 자리/ 김나영  (0) 2023.07.07
청동거울/ 김수우  (0) 2023.07.07
땅끝/ 홍일표  (0) 2023.07.06
서산대사 게송/ 김백겸  (0) 2023.07.06
수선화/ 최서진  (0) 202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