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과 함정
문보영
간다
네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평지 특화형 동물로
지형지물에 약하다 너로 인해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태양이 곧바로 비추므로
쪄죽는 수가 있다
그러나 큰 나무와 풀 그리고 너로 인해
햇빛이 차단되어
내가 있는 곳은 서늘하다
그 서늘함으로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간다는 말은 민망하다
살아 있다는 말은 과장이다
정글에서 나는 이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기가 거기 같다는 게 정글의 이로움이다
"지금쯤이면 도착할 떄가 되었다."
"도착할 즈음이 되었다."
나는 네가 하는 말의 끝부분을 반복한다
그것은 일종의 지형지물에 가깝지만
나는 해낸다
살아간다는 말보다
서늘하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나는 네가 하는 말을 '다' 받아 적는다
여기에서 '다'는 사랑의 노동적 측면이다
너는 보존 식량을 조금 꺼내 핥았고
정글의 물은 미지근하다
나는 막 눈을 뜬 참이었다
거기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현대시』 2023-3월호
▶무엇으로 한 편이 시는 특유해지는가?/ 보물 찾기와 함정 찾기(발췌)_육호수/ 시인 · 문학평론가
이 시에서는 "편지 특화형 동물", 바로 알 수 없는 너와 나의 관계, 주변 환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의 지양 등을 통해 이 정글이라는 공간(무대)을 이질적으로 제시했다. 이후 이 무대 위와 바깥을 허무는 발화를 통해, 외려 이 무대로 청자를 끌어들인다. 때문에 시의 후반부에서 '너'는 이전의 알레고리를 배반하는 대상이 되어 등장한다. 너는 '그늘'이거나 '지형지물'이 아니고 내게 목적지를 알려주는 '신적인 존재'의 모습이 아니라 "보존 식량을 꺼내 조금 핥"는다. 시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자가 "막 눈을 뜬 참"이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거기'에 함정이 있다고 했을 때, 이 '막'의 순간은, 함정이 있는 '거기'는 어디인가? '너'가 보존 식량을 꺼내 핥던 자리인가? 아니면, 내가 이 낯선 "정글"이라는 곳에서 "간다"고 말하는 순간이 내가 눈을 뜬 순간인가, 만약 내가 "막 눈을 뜬 참"이라는 이 문장에서 눈을 뜬 것이라면, 이전의 상황에서 나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게 되는 걸까? 알레고리를 만들고, 알레고리를 무화하고 알레고리의 무대 바깥의 또 다른 알레고리를 출발점을 제시한다. 알레고리의 정글 속에서도, 그 바깥에서도, 막 눈을 뜬 이곳에서도, 함정이 있다는 거기에서도 시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살아간다는 말은 민망하다/ 살아있다는 말은 과장이다" (p. 시 196-197/ 론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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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4월(400)호 <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에서
* 육호수/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시집『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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