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모든 육체는 다 풀이다*/ 박분필

검지 정숙자 2023. 6. 24. 13:07

<2023, 한국시문학상 수상작> 中

 

    모든 육체는 다 풀이다*

 

    박분필

 

 

  바람과 빛의 파노라마 속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오르는 샛별오름

 

  높은 파도가 푸른 바다를 소용돌이치듯 하얗게 펼쳐 보이는 억새꽃 물결

 

  빛 너머에는 또 다른 빛이 있었고 바람 너머에는 또 다른 바람이 있었다

 

  포효하며 흐르는 바람강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물살이 어딘가

  먼 곳으로 나를 실어 갈 것만 같아 나를 바닥에 가라앉힌다

 

  휘파람 소리에 눈을 뜬다 휘파람의 이랑과 골에 뭉텅뭉텅 남아

  있는 묵직한 통증들 온몸을 휘저어 운다

 

  마치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처럼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오면 정월

  대보름의 들불축제

 

  이곳은 다 불길에 휘감길 것이고 까맣게 타버릴 것인데 죽음의

  씨앗처럼 심어진 봉분도 싹틀 수 있을까 

 

  새롭게 피어날 날개들이 부활의 춤을 춘다 하얀 억새꽃과 보라색

  하늘에 감도는 깊은 침묵을 메워 줄

 

  모든 육체는 다 풀이다

     -전문(p. 128)

 

   * 이사야 40장 7절

 

   * 심사위원 : 강우식  박제천  이길원  장순금  정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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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3-여름(178)호 <2023, 한국시문학상/ 수상작> 에서

  * 박분필/ 1996년『시와시학』으로 문단 활동 시작, 시집『창포잎에 바람이 흔들릴 때』『산고양이를 보다』『바다의 골목』등, 동화집『홍수와 땟쥐』『하얀 전설의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