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표연탄
류성훈
당신 없이 오던 곳에, 당신과
훗날의 내가 옵니다 별 여유도 없이
떠나온 곳으로 가끔 도망치기도
도망쳐 온 곳으로 가끔 떠나오기도
거기 아직도 멀뚱히 선 절반의 나도
살았던 시간보다 갑절 오래된
지금의 나도 우수처럼 녹아 흘러 나갈 테지만
어려서 오르지도 못하던 고개 위에서
색깔만 아름다워진 옛 피란민촌을 보며
당신은 이렇게 예쁜 마을이 있던가 했고
나는 그들이 새 삶을 꾸렸던 연탄방도
여기 어디쯤이란 것만 일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천주교 유치원이 있고
고개를 넘어가면 태어난 집이 있고
아직도 빨래가 벽화처럼 널려 있었습니다
왕표연탄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그때 담벼락 이름에 그때 소금기, 나는
바람이 사람보다 오래 산다고 읽었지만
대규모 철거에 마을 화장실과 타일이
햇살에 드러나 반짝이는 걸 보곤
내 말에 아무런 확신도 못 가졌습니다
어찌 됐건 지금이 더 나은 삶, 왜
아직도 여기 서 있느냐고 물어도
돌아가신 외할머니 손만 붙드는 아이
이십여 년을 가던 중국집이
최고 흥행 영화의 배경으로 나온 후론
면발이 퉁퉁 불어서 나왔습니다
이젠 떠나지 않아도 된다 믿을 때는
가장 떠나야 할 때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순간은 무슨
지나간 건 모두 찰나지, 라고 말하며
나는 아무런 확신도 못 가졌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류성훈은 미궁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미궁의 위상을 미학적 상상력의 중간 지대로 전환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수행한다. 모호함과 불확실함은 류성훈의 시세계에서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이다. (···)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실패와 좌절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찰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실패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가 번뇌하며 시를 쓰는 자로 여기 남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은 파국과 죽음을 무릅쓴 외줄 타기와 같을지도 모른다. 디디 위베르만은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예전'과 '지금'이라는 이질적인 두 관점 이외에 세 번째 요소를 말한다. 바로 예전과 지금을 몽타주하는 '응시'이다. 응시가 없다면 예전과 지금의 겹침과 충돌, 몽타주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의 말에 다시 한번 기대어, 비유적인 차원에서 류성훈의 시적 화자를 언어 분해와 재조립을 수행하는 기예를 통해 가능성의 몽타주 혹은 가능성의 중간지대를 펼치는 줄타기 곡예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시인은 어느덧 이 덧없는 명명조차도 기쁘게 빠져나갈 것이다. (p. 시12-13/ 론 123-124) (박상수/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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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라디오미르』에서/ 2023. 6. 1. <파란> 펴냄
* 류성훈/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보이저 1호에게』, 산문집『사물들 The Things』『장소들 The Pl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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